[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수천 년 동안 지하 깊숙이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을 보다 안전하게 격리하기 위해 알칼리성을 좋아하는 미생물을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지하 처분 시설의 시멘트 장벽이 시간이 지나며 균열·열화되는 기존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자가 치유 장벽 개념이다.
현재 핵폐기물은 지하 수백 미터 터널과 금고에 특수 제작된 용기에 담아 매립하는 지질 처분 방식이 가장 유력한 해법으로 꼽힌다. 이때 시멘트는 구조적 지지와 틈새 밀봉, 용기 캡슐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하수가 시멘트와 반응하면서 미세 균열과 기공이 생기고, 이 틈을 따라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전통적인 시멘트는 pH 12 이상인 고알칼리·강부식성 특성을 지녀 인근 점토층 등 다른 보호 장벽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처분 시설 전체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줄이기 위해 저 pH 시멘트와 미생물 유도 탄산염 침전(MICP·Microbially Induced Carbonate Precipitation)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MICP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먹고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시멘트에서 용출되는 칼슘·마그네슘과 반응해 석회석 등 탄산염 광물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성된 탄산염 광물이 시멘트 내 균열과 기공을 메우면서, 일종의 ‘스스로 치유하는 장벽’이 만들어진다는 구상이다.
연구팀은 ACS 오메가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조건에서 미생물 대사는 MICP를 유도해 저장소 안정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6개월간의 실험을 통해 이 메커니즘의 작동 가능성을 검증했다. 전통적인 고 pH 시멘트보다 부식성이 낮고 장기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pH 10~11 수준의 저 pH 시멘트 슬래브를 사용했으며, 자연적으로 높은 pH 환경에서 채취한 알칼리성 박테리아를 시멘트 주변의 합성 지하수에 주입했다.
지하 처분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수준의 유기물(젖산염 등)을 모사하기 위해, 박테리아가 이용할 수 있는 유기물 농도도 여러 단계로 달리했다. 이는 실제 지하 환경에서 폐기물 부패 정도와 주변 유기물 공급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설정이다.
6개월 후 확인 결과, 자가 치유 효과의 크기는 박테리아가 사용할 수 있는 유기물, 즉 먹이의 양에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물이 풍부한 고탄소 시스템에서는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 이산화탄소가 많이 생성됐고, 그 결과 주변 수질의 pH가 낮아지며 석회석이 대량으로 침전됐다. 이 탄산염 광물이 시멘트 균열과 기공을 메우면서, 시멘트 구조의 다공성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자가 치유 효과가 확인됐다.
유기물이 거의 없는 저탄소 시스템에서는 박테리아가 충분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지 못해 탄산염 광물 형성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균열 봉합 효과도 미미했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저 pH 시멘트와 알칼리성 미생물을 결합한 MICP 방식이 지하 핵폐기물 처분 시설의 추가 보호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은 실험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하고, 실제 지하 처분 환경은 지질 구조, 지하수 흐름, 방사성 붕괴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더 긴 시간 규모와 더 복잡한 조건을 반영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K-카본 미래제조 혁신] 〈2〉 '열가소성 탄소복합재'로 항공기 부품 국산화](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4/10/25/news-p.v1.20241025.74ee5cb799234291a379f9e02a33de1f_P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