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절반 섬’, 일본은 그 섬 거느린 ‘본토’로 격상

2025-06-12

‘반도’라는 호칭에 깔린 제국주의

서양의 세계 지도가 중국을 경유해 일본에 들어와 보급되기 전까지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은 일본·중국·인도의 세 거점으로 이루어진 3극 체제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즉 불교의 발상지 천축(天竺·인도)이 세계의 끝이었던 셈이다. 19세기 중반에 구미 해양국가들에 항구를 개방하고서야 일본은 비로소 ‘해외’라는 새로운 세계와 직접 만나게 된다. 영어 ‘Overseas’의 번역어에 해당하는 해외는 당시 단순히 ‘바다 밖’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일본에서 몇 개 이상의 해역이나 대양(Ocean)을 건너야 하는 먼 지역, 즉 대표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을 의미했다. 외국인을 의미하는 일본어 ‘가이진(外人)’이 실제로는 서양인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국외’라는 말도 함께 쓰였지만 일본의 언중은 해외를 훨씬 더 선호했다(일본 고베대학 신문기사문고 사이트에서 용례를 검색해보면 해외가 국외보다 8배 넘게 많다).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근대화의 첫발을 뗀 일본인들에게 해외는 장대한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일본의 근대는 해외의 발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지형상의 정체성 따져 호명하면

식민주의 통치에 유리하다 판단

‘본도’라 칭한 대만·오키나와까지

일본 제국의 ‘내해’ 영역으로 치부

내해 바깥의 해외는 서양을 의미

가능성의 공간으로 해외 받아들여

“우리나라는 궁벽한 해외에 위치”

해외는 고래부터 존재했던 말이다. 바다 남쪽의 오랑캐라는 뜻의 ‘남만(南蠻)’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대륙에서 볼 때 바다 밖은 야만의 공간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해외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세종실록의 “우리나라는 궁벽하게 해외에 있으므로(我國僻在海外)”와 같은 기술에서 볼 수 있듯이 ‘바다 건너’ ‘벽지(僻地)’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거니와, 스스로를 낮춰 대륙과 중원의 변방에 위치시키는 화이(華夷)적 세계관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어 해외는 이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받아들여지며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1900년대에 발행된 구한말의 신문기사를 보면, 국경에서 육지로 이어진 연해주나 하얼빈 같은 곳조차도 국외가 아닌 해외로 지칭하는 사례가 많았다. 구한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외는 국외보다도 사용 빈도가 훨씬 높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1920~1999)에서 검색해보면 전자는 3만5367건, 후자는 3836건이다. 해외가 9배 정도 많이 사용되는 셈이다. 중국어의 경우, 해외도 사용되지만 ‘경외(境外)’, 국외가 일반적이다. 경외라는 단어에서 14개 나라와 국경을 두고 있는 대륙 국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고대 한국의 역사는 만주를 중심으로 한 북방에 기원을 둔다. 기마 문명의 남하를 경계하면서도 북방영토를 개척·확장하려는 노력은 고려·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북방의 광활한 대륙은 인적·물적 이동의 주요경로였다. 그런데 영토의 3면을 둘러싼 바다와는 이렇다 할 관련을 맺지 않았던 대륙지향 국가의 후예들에게 해외라는 미지의 공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문명이 넘나드는 바다를 무대로 국력을 키워온 일본은 북방의 청과 러시아를 제압했다. 대륙은 누습과 정체의 땅이었고, 바다는 개명과 진취의 공간이었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해외, 반도와 같은 개념은 대한제국기 한국인들의 국토지리에 대한 인식, 나아가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일제가 민족정기를 훼손하고자 전국의 고산준령 요소에 쇠말뚝을 박아놓았다는 이른바 풍수침략론이 이목을 끈 적이 있었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동원된 공무원들이 험한 산지를 누비고 다녔지만 측량과 안전장치 목적으로 바위에 박힌 쇠꼬챙이 수 백개를 수거한 것이 전부였다. 근대국가가 정색을 하고 연출했던 히스테리성 피해망상극으로 기억될 사건이다. 반도 음모론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반도라는 명칭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제헌헌법 4조 영토조항 제정 시에도 한반도라 할 경우 일제에 의한 비하의 의도를 수용하게 된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음모론자의 주장에 의하면 ‘반쪽 섬’이라는 뜻의 반도는 ‘페닌슐라(Peninsula)’의 일본어 번역이거니와 이 단어는 조선을 “일본 열도(列島)에 편입시켜 속도(屬島)로 삼아 속국으로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인의 저의가 짙게 깔린 용어”라는 것이다. 근거도 논리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일본인·중국인 연구자들에 의한 연구결과가 있다.

라틴어가 어원인 ‘반도’는 중립적 표현

반도라는 단어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일본의 난학(蘭學)자들에 의한 네덜란드어 지리서 일본어 번역본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후 1862년 일본 최초의 영일사전(『英和対訳袖珍辞書』), 이어서 1869년에 홍콩에서 출판된 영중사전(『英華字典』)에 반도로 등재되었다. 대부분의 서양 언어권에서 페닌슐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의 섬’ 같은 지형이라는 뜻의 단어이지만 특이하게도 독일어와 더불어 네덜란드어에서는 라틴어 어원을 자국어로 풀이한 단어 ‘반절 섬(halfeiland)’이라는 단어로도 유통된다. 에도시대의 난학자들은 이를 반도(半島)로 직역했던 것이다. 거의 섬에 해당하는 지형이 반절 섬이 되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정착한 이유는 번역의 기점언어가 우연히 네덜란드어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에 출판된 중국의 지리서에는 페닌슐라의 번역어로 ‘침지(枕地)’ ‘토고(土股)’가 등장한다. 영어단어 자체에 내재된 섬의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고 ‘베개 형상의 땅’ ‘몸에서 뻗어나간 허벅지 모양의 토지’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은 명백히 대륙 국가의 관점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중국도 일본에서 건너온 반도를 사용하게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 1895년 시모노세키에서 체결된 강화조약에 “요동반도를 할양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중에 구룡반도·산동반도·요동반도가 서구열강에 점유된 것은 해양세력이 바다로부터 접근하기에 유리한 지형 때문이지 그것이 반도라 불려서가 아님은 자명하다.

근대지리학의 도입과정에서 창출된 반도라는 개념은 일본의 해외팽창 과정에서 정치적·지정학적 개념으로 바뀌어 갔다. 예를 들면 『고종실록』의 1904년 2월 23일 첫 번째 기사에는 “일본은 반도의 존망이 그 안위와 관계된다고 여겨”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보통명사인 반도가 여기에서는 조선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서유럽 국가 사이에서 페닌슐라는 스페인·포르투갈이 차지하는 이베리아 반도를 특정하는 말이었다. 물론 부정적인 맥락에서이다. 유럽의 변두리에 위치하면서 이슬람세력에 800년간 지배당한 지역에 대한 편견의 시선도 배어 있었다.

제국의 지리적 구성

일본은 바다로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근대적 지리개념을 응용하고, 때로는 창출하기도 했다. 류큐(오키나와)와 대만을 복속하고 ‘본도(本島)’라 칭했다. 1900년대부터 조선은 반도가 되었다. 본도와 반도는 바다 건너에 있었지만 일본어 해외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일본제국의 ‘내해’ 영역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국 일본의 본원인 일본열도는 어떻게 칭했는가. 내지 또는 본토였다. 이 두 단어에 섬을 환기시키는 요소는 전무하다. 외지의 영토에 부여된 섬 또는 반 섬으로서의 도서(島嶼) 정체성은 결과적으로 일본열도의 섬으로서의 지리적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울러 민족 정체성 대신 지형상의 정체성으로 호명하는 것은 균질한 제국의 공간을 창출하고 통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내지인·반도인·본도인이라는 호칭이 활용되기도 했다.

지리용어의 번역에 있어서도 도서 국가인 일본은 대륙 국가인 중국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유럽인들은 유라시아 대륙을 둘로 나누어 옥시던트-오리엔트, 또는 웨스트-이스트로 불러왔다. 중국어 번역으로는 서방-동방이 된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동양으로 번역해 사용해왔다. 중국에도 오래전부터 동양·서양이라는 표현은 존재해왔으나 별도의 개념이었다. 예를 들면 ‘동양’은 동쪽 바다였고, 동쪽에 있는 일본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했다. 육지로 이어져서 문명의 교류가 활발했던 두 지역을 두고 일본인들이 왜 해역(洋)을 의미하는 서양-동양으로 표현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앞에서 거론한 일본인들의 도서(島嶼)적 지리관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할 듯싶다.

윤상인 전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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