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의 외침: 원폭의 상처를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길

2024-09-19

[특별기고]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약학부 약학전공 23학번 김효진

히로시마와 후쿠시마는 지명의 유사성과 원자력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지역이라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혹은 히로시마를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그래서 아직도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히로시마에 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오펜하이머와 맨해튼 계획에 대해 배우고 정확한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원자폭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2024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 참가한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그동안 원폭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경로는 대부분 인터넷 기사나 미디어 자료, 책뿐이었다. 게다가 상당수의 자료는 시대적 상황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집중하기 때문에 개인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적었다. 역사적 배경 역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일이긴 하나, 권력 다툼 사이에서 희생된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히로시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돔, 평화기념관 등을 방문하며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평화기념관에 전시된 찢어진 옷가지들, 원폭 피해자의 고통을 담은 그림, 원폭의 충격으로 붕괴된 건물의 잔해는 당시 민간인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기념관 내 전시 대부분은 정치적 의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당시 히로시마 주민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평화기념관 옆에는 평화기념공원이 있는데, 늦은 밤이었지만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위령비 앞에서 묵념하고 가는 것과, 추모를 위한 공원이 시내 중심에 너무나도 잘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지난날 인류의 과오를 반성하고 세계 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공원 한편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자리 잡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추산 히로시마 내 한국인 피폭 희생자는 약 5만 명이라고 한다. 당시 히로시마의 인구가 약 42만 명, 피폭자는 약 20만 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큰 피해를 본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강제징용, 그리고 일본에 잔류하신 한국인 피폭자와 그 후손을 향한 차별. 가슴 아픈 역사를 생각하면 공원의 외곽에 위치한 한국인 위령비는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

8월 4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서는 한여름 히로시마의 뜨거운 열기도 막지 못하는 참가자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3일 동안의 금지대회에서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젊은 세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린 자식의 손을 꼭 쥐고 온 부모님들, 그리고 자발적으로 모여 원폭 금지 연극을 하거나, 플래카드를 만들어오는 앳된 학생들. 이렇게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국가가 아닌 개인이 연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원폭 피해를 추모하는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다음 세대에게 계속해서 ‘NO MORE 히로시마, NO MORE 전쟁, NO MORE 히바쿠샤(피폭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와 책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히로시마에는 건약, 인의협, 건치, 청한 회원 및 대학생이 같이 가게 되었는데,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 우리를 초대해 주신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에서 감사하게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 주셔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후지와라 선생님 (피폭자 진료 의사), 교류회에서 뵌 야마다 스미코 님 (‘원폭 고아로서 살아가는 것은’ 강연)의 피폭자 증언은 심금을 울리는 강연이었다.

원래 피폭 생존자로서 증언해 주시기로 하셨던 어르신께서 위독하셔서, 후지와라 선생님께서 원폭의 위력과 피폭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점을 대신 강연해 주셨다. 폭심지 반경 1km 이내에 낙진과 1800℃ 이상의 불똥이 튀었으며, 폭발 순간 방출되는 초기 방사선뿐만 아니라 폭발 후 1분 이내에 핵분열 생성물질에서 방출되는 잔류 방사선으로 인한 피폭 피해도 극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피폭자를 인정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 사이 피해자들은 생존을 위해 야쿠자가 되거나, 다른 원전 사고나 타인의 고통은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후생노동성은 11개의 질병을 지정하여, 이 질병을 앓고, 의사 소견서 및 2명의 증인이 존재하는 경우에 피폭자로 새롭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80년이 흐른 지금, 피폭자 건강수첩을 수령할 수 있는 생존자는 많지 않다.

원폭은 피폭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 고통을 안겨주었다. 야마다 스미코 님은 원폭으로 인해 자신은 결핵을 앓았고 부모님을 잃었다. 원폭 고아로서의 삶은 신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서적 고통을 동반했으며, 차별과 사회적 소외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그 후 야마다 님은 자신과 같은 피폭자들을 위해 히로시마 생협 병원에서 의료 복지사로 근무했고, 현재도 피폭자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원폭은 피폭자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은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피폭 2세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피폭자 역시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증명하더라도 법이 정한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전혀 쉽지 않으며, 이러한 과정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 따라서 원폭 피해자의 대상 범위를 넓히고,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여 피폭자를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겪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증명 절차를 간소화하고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던 시각인 오전 8시 15분이 되면 매일 평화기념공원에서는 1분간 추모를 위한 차임벨이 울리고, 매년 8월 6일에는 추모행사가 진행된다. 인류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의 현장인 히로시마는, 전쟁의 피해를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이곳에서 느낀 감정과 깨달음은 평화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쟁, 원수폭이라는 과오를 반성하고 평화와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번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서 얻은 경험은 단순히 역사적 비극을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히로시마는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동시에, 전 세계가 연대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 도시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후 팔레스타인 연대,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연대 등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불의와 차별에 맞서 연대하는 활동들이 더욱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억압, 불평등에 맞서며 평화와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연대의 실천이자,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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