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앞마당 공유’ 한·일의 새로운 60년

2025-06-24

수교 이후 일상화된 민간 교류

산업도 공동체 수준으로 협력

과거사로 정치 갈등도 겪지만

공감대 넓히는 미래 만들어야

2022년 일본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한국 사극을 시청 중인 일본인 승객을 보고 무척 놀랐던 일이 있다. 조선 장수로 분장한 연기자의 모습과 화면 밑으로 흐르는 일본어 자막의 조합은 무척 생경했지만, 그만큼 신선했다. ‘일본의 한류’ 이야기야 그전부터 숱하게 전해들었지만 일본 현지에서 눈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은 지금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듬해 봄, 2박3일 일정으로 가마쿠라를 찾았다. 일본에서 이름 높은 ‘가마쿠라 대불(大佛)’을 보러 가기 위해 탄 전철의 승객은 한국인이 반 정도는 되어 보였다. 기억이 왜곡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일본인 못지않게 많았다는 건 분명하다. 당시 가마쿠라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 났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크게 흥행하면서 배경이 된 가마쿠라고교 앞 전철역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사실 그 즈음 일본의 이름난 관광지는 어딜 가나 한국인 천지였다. 어떨 땐 한국에 사는 지인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965년 6월 한국과 일본이 정식수교를 맺고 60년이 지난 지금의 양국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일 관계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드러나고 그중에는 부정적인 것이 적지 않으나 국민들이 서로를 큰 거부감 없이 접촉하고, 즐긴다는 게 핵심이다. 1200만명, 지난해 양국을 오간 사람들 숫자다. 양국 민간 교류는 일상화에 이르렀다.

경제적인 밀착도 ‘공동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표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한일 기업협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산업협력은 단순한 수출입을 넘어 실질적인 공급망 공동체 수준으로 전환되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철강, 에너지, 전자부품 등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정밀한 기술 협업을 맺었다. 베트남, 인도 등에서는 동시 진출과 공동 운영이 확산하는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베트남 박닌과 타이응우옌의 휴대전화, 가전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일본계 소재기업과 공급망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SK온은 헝가리 코마롬과 미국 조지아의 배터리 공장에서 일본 부품 업체와 안정적인 납품 계약을 맺고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LG디스플레이는 일본 JOLED의 인쇄형 OLED 기술을 도입해 고해상도 패널의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문제는 역시 정치다. 과거사와 얽히면 서로의 자존심, 정체성과 연관이 되어 한정없이 복잡해진다. 외교에서 그렇지 않은 게 있을까 싶지만 특히 이 문제는 집권 세력의 접근 태도가 중요하다. 전제해야 할 것은 양국 정부가 정치적 대결모드로 간다고 해도 부침은 있을지언정 경제, 문화를 중심으로 밀착하는 흐름을 거스르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문재인-아베 신조 집권 당시 정부 간 대립은 수교 이후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관광을 즐겼고, 일본은 당시에도 한류 세계화의 거점이었다. 한국을 ‘손봐 주겠다’(?)며 시작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는 오히려 자국 경제에 자충수가 됐고, 결국엔 서로가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임을 새삼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어떨 것인가. 일본의 관심은 크다. 이 대통령이 야당 시절 일본에 적대적인 발언을 했다면서 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노골적이라고 해도 좋을 구애로 일관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3년 가까이 경험했던지라 바뀐 상대에 대한 관심이 더 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이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과 같다”라고 했다. 단순하게 지리적 근접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일궈 온 양국 관계에 대한 총평일 것이다. 마당을 공유하는 이웃은 가까워서 갈등이 잦다. 갈등을 줄이면서 공유하는 마당을 넓혀 가는 게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기초를 닦아야 할 한국, 일본의 새로운 60년이 보다 알차기를 기대한다.

강구열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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