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로 아내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백씨 부녀가 지난 4일 검찰의 상고 포기로 16년 만에 ‘재심 무죄’를 확정받았다. 앞서 지난달 30일엔 수원지법 형사합의15부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9차 용의자로 몰려 옥살이 중 사망한 고 윤동일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가 1992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33년 만이다. 지난 1월엔 존속 살해 혐의로 25년째 복역 중이던 무기수 김신혜가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이들 굵직한 세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끌어낸 인물은 박준영(51) 변호사. ‘재심 전문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그는 지난 20여년간 가출 청소년, 노숙인, 탈북자 등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회적 약자의 재심 청구를 도맡아 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사건 등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승률 100%’인 그가 현재 재심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는 사건만 10건이 넘는다.
어떤 기준으로 사건을 맡나.
“하루에도 수십 건의 이메일과 문자로 억울한 사연이 들어온다. 혼자 힘으론 다할 수 없어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무엇보다 재산 범죄는 안 맡는다. 그런 사건은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나. 대신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억울한 사연 중 진짜를 어떻게 확신하나.
“간절함과 진실성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간 일관되게 억울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의 지지도 있다. 가족은 물론 교도관·봉사자들이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청산가리 사건의 경우 ‘언어의 한계’가 절실하게 다가왔다. 사법 절차에선 언어가 없으면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문맹이었던 아버지, 경계선 장애가 있던 딸에게 법정 언어는 외계 언어나 다름없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보호와 더불어 언어적 한계로 허위자백 등이 이뤄지는 데 대한 개선책이 속히 마련됐으면 싶다.”
박 변호사의 차량은 3년이 채 안 됐지만 주행거리는 16만㎞에 달한다. 전국을 돌며 억울한 사람들을 만나고 증거를 수집하는 그에게 차를 선물한 사람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21년간 수감됐던 장동익·최인철씨였다. 이들이 “5년간 고생한 수임료”라며 건넨 뜻밖의 선물을 처음에는 거절했단다. 박 변호사는 “애초에 선의로 시작한 일이니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마지못해 받았는데 이게 다른 재심을 준비하는 커다란 동력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수십 년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보상으론 턱없이 부족할 텐데, 그 돈을 기꺼이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당부에 최대한 값지게 쓰고 싶었다”고 전했다.
재심 끝에 무죄를 받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3년엔 각자 받은 배상금을 출연해 청소년 장학재단인 ‘등대장학회’를 설립했다. 장동익씨가 이사장을,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의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 후 2020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윤성여씨가 이사를 맡았다. 박 변호사도 행정 업무와 후원 모금 활동을 맡았다. 등대장학회는 현재 전국 40여 명의 청소년에게 의료비와 생활비 등을 매달 정기 후원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장학재단을 운영해 보니 재심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망망대해에선 등대 불빛 하나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제 의뢰인들이 그러더군요. 절망 속에서 자신을 믿어준 단 한 명의 존재가 절실했다고요. 외롭고 힘든 청소년들에게 ‘그래도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단 한 번이라도 갖게 해주고 싶어요.”
재심 전문 변호사로서 향후 계획은.
“어느 진영이든 ‘그래. 이 사람 얘기라면 한번 들어볼 필요가 있지’라며 신뢰할 수 있는, 소통이 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어느 국민도 사법제도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사회적 약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사법 시스템 구축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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