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이용 수도권 쏠림현상과 지역의료의 위기

2024-09-29

정부의 일방적 의대 정원의 대규모 확대로 촉발된 의·정 갈등과 의료대란이 8개월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처음 의대 정원 확대의 명분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으나 의료계는 의사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수 및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실현 가능한 해결방안부터 먼저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며 무분별한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료가 여러 가지 이유로 위기라는 점은 정부나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 인정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편, 가끔 주변 지인으로부터 ‘몸에 이상이 있는데’ 혹은 ‘암이라서 수술을 급히 받아야 하는데’하면서 서울이나 수도권 병원에 아는 의사 없는지 부탁받은 경우가 종종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부탁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어떤 질환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묻고 그 정도라면 도내 의료기관도 충분히 대처 가능하니 가급적 지역 내 의료기관을 이용해보라고 권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지역의료에 대한 기피 현상과 의료 이용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는 ‘진료권’이라고 다른 지역 의료기관의 무분별한 이용을 방지하고자 환자의 건강보험이 등록된 8개 권역 진료권을 분류하여 소속 진료권에서 진료를 먼저 받도록 한 제도 있었으나 국민 편의를 위해 98년 폐지가 되면서 현재는 전국 어디에서나 진료 예약만 된다면 수도권 대형 병원에서 자유롭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변화된 결정적 계기인 KTX(고속철도)의 도입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역 외, 특히 수도권으로의 의료 이용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2022년 공공보건의료 통계’를 보면 2021년 상급종합병원 이용 환자 중 전북지역 환자가 지역 내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한 비율(관내 이용률)은 68.0%(전국 평균 63.7%, 전북은 17개 광역단체 기준 7위)로 반대로 말하면 상급종합병원 이용 도민 3명 중 1명이 다른 지역에서 진료받았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런 현상은 최근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조사에서 비수도권 환자의 이른바 수도권 Big 5 병원 진료 다빈도 질환 Top 4는 모두 암 질환으로 1위 유방암, 2위 갑상선암, 3위 위암, 4위 폐암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부분 전북지역 내 상급종합병원에서 충분한 진단 및 치료 역량을 갖춘 질환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수도권으로 의료 이용이 집중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데 우선 지역의 경제적 자원의 외부 유출이 크다는 점이다.

22년 비수도권 환자의 수도권 Big 5 진료 환자는 71만 명으로 직접적인 진료비는 연간 2조였고 그 외에도 원외 이동교통비, 숙박 등 부대비용, 외래·수술 장기간 대기비용 등을 합산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골든타임이 중요한 중증 응급 질환자의 적정시간 응급실 미도착비율이 연평균 14만 명으로 그 원인이 지역 의료기관 기피와 수도권 병원 선호 현상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파악된다.

지역 입장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 쏠림현상으로 의료기관의 경영상태 악화와 지역 경제의 악영향, 의사, 간호사 등 지역 내 우수한 보건의료 인력의 수도권 유출로 인한 지역 내 의료서비스 질의 악화, 환자의 지역의료 이용률이 감소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의료전달체계와 각 의료기관의 역할에 혼선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1차(지역 병·의원), 2차(중소 병원), 3차(대학병원과 대형 종합병원)로 구분되어 있다. 이런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단계로 환자가 분산되어야 하는 데 이를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보니 거의 자유롭게 많은 환자가 경증 질환에도 3차 의료기관인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가 있다.

이런 경향은 지역의 3차 병원을 넘어 큰 대형병원이 몰려있는 수도권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을 초래하며, 수도권 의료 자원의 과부하와 지역의료의 위기를 유발한 것이다.

이는 지방 의료기관이 수도권의 대형 병원보다 상대적으로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믿음이 원인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도내 의료 인력의 수준과 전문성, 시설과 장비 등이 수도권 대형 병원보다 절대로 뒤지지 않으며, 여러 단계의 인증평가제도와 통계자료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의료 이용 수도권 쏠림을 줄이고 지역의료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환자와 의료기관 간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에 적합한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데 충분한 정보를 받기 위해 도내 의료기관의 시설과, 진료가 가능한 전문 분야가 존재함을 적극적으로 홍보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의료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 내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한 의료계와 각급 의료기관, 그리고 도내 보건의료 행정당국의 긴밀한 협조와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김형준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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