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이끌림, 넛지

2024-10-24

전기요금 청구서를 보면 우리집 뿐만 아니라 같은 평형의 이웃 세대들의 전기세 평균 요금도 함께 기재되어 나온다. 이를 통해 우리 집의 전기 사용량을 인식하고 다른 집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다면 조금 더 아껴 쓰도록 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비교 정보 제공으로 행동변화가 유도되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넛지(nudge)라고 할 수 있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 찌르기’라는 뜻으로 미국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이 개념을 발전시켜 ‘넛지 이론’을 소개한 바 있다. 즉 타인에게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선택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넛지는 우리 일상생활에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은행에도 넛지가 적용된 사례들 중 하나로 현금 인출기를 꼽을 수 있다. 넛지가 적용되기 전 사람들은 현금 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 한 후 카드를 그대로 꽂아 두고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카드를 먼저 뽑아야만 현금을 인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변화시키자 본인의 카드를 두고 가는 실수를 덜 하게 된 것이다. 마트 계산대에서도 마찬가지. 계산대 주변에는 껌이나 화장지, 초콜릿 등 비교적 가격 부담이 덜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계산을 하는 동안 고객의 시선이 잘 닿는 곳에 이러한 상품들을 진열해 틈새 매출을 올리기 위한 넛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이러한 넛지를 역이용하는 ‘다크넛지(Dark nudge)’ 또한 고도화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온라인을 통한 전자상거래 규모가 증가하면서 비합리적 구매를 유도하는 ‘다크넛지’가 성행하고 있는 것. 이는 온라인 사용 인터페이스에서 화면 구성을 이용하는 상업적 관행으로 소비자의 자율성과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마케팅 방식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소비자의 눈을 교묘하게 속여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한 달 동안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 뒤 소비자가 따로 구독을 해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유료로 전환해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거나, 모바일 회원가입은 가능하지만 탈퇴는 PC로만 가능한 경우, 가입절차는 간단하지만 해지절차가 복잡한 경우 등 다양한 다크넛지 사례들이 있다.

이러한 다크넛지 마케팅이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쉽고 빠르게 실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거래든지 간에 서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이는 소탐대실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이득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면 브랜드 평판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고객들은 떠나게 될 것이다.

다행히 올 초 이와 관련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소비자들의 피해 예방 및 권익 보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넛지는 행동을 촉진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 모든 사람이 유도하는 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스스로 더 나은 판단을 내리게 하는 부드러운 개입은 저항과 부작용 없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의 갑질 논란이 있었을 때 아르바이트생의 티셔츠에 ‘나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자 갑질이 확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넛지는 강제나 압박이 아닌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통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사람들의 니즈와 감성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이익과 사회의 공익을 높일 수 있는 넛지가 작동될 때보다 살기 좋은 사회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모여 결국 우리 사회의 큰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방극봉 <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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