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 초소형 칩 이식…언어장애 환자가 노래까지 한다

2025-06-25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으로 말을 할 수 없는 45세 남성이 감정을 담아 노래한다. 성대도 입술도 움직이지 않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노래는 억양과 강세, 음의 높낮이까지 그가 병에 걸리기 전 말투와 흡사하다. 이 놀라운 성과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UC Davis) 연구팀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최신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즉각적인 음성 합성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신경 보철기’를 개발해 환자의 머릿속에 있는 ‘말하고 싶은 생각’을 실시간으로 읽어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술은 환자의 뇌, 특히 말하기 기능을 담당하는 전중심회(ventral precentral gyrus)에 길이 1.5㎜짜리 실리콘 전극 256개를 이식해 구현됐다. 이 전극은 뇌의 전기신호를 10㎳(밀리초·0.012초) 단위로 포착해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AI) 시스템으로 전달한다. 연구진은 환자가 병에 걸리기 전 녹음해둔 음성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전달받은 전기신호를 바탕으로 높낮이·억양·강세·감정을 담은 맞춤형 음성을 즉시 합성했다. 이 연구는 BCI 기술이 단순히 컴퓨터에 단어를 입력하거나 커서를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말하는 행위 자체를 복원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특히 억양 조절이나 감탄사, 간단한 멜로디까지 표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 고유의 언어 감정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CI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인간의 의도나 명령을 기계장치나 외부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게 하는 기술이다. 전극을 뇌에 삽입하는 ‘침습형’과 두피에 센서를 부착하는 ‘비침습형’으로 구분된다. 이 중 요즘은 전극을 뇌에 직접 삽입해 더 정밀한 신호를 해석하는 ‘침습형 BCI’가 더 주목받고 있다. 침습형 BCI는 수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감염·출혈·면역반응 등 의료적 리스크를 수반하지만 고해상도의 뇌 신호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침습형 BCI의 핵심은 이식해야 하는 전극의 유연성과 해상도, 그리고 실시간으로 감정까지 반영할 수 있는 AI 알고리즘의 정교함이다. 뇌의 곡면에 밀착해 신호를 왜곡 없이 수집하고 이를 정밀하게 해석해 바로 음성으로 출력하는 전 과정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가 시장 및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뉴럴링크는 신체 움직임을 계획하는 뇌의 부위인 일차운동피질에 전극을 이식한 후 전신마비 환자가 마우스나 키보드 없이 컴퓨터 커서를 조작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특히 뉴럴링크의 칩 ‘텔레파시’는 실제 이름처럼 무선으로 작동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뇌 속에 블루투스 장치를 심어 놓은 셈이다. 이 경우 BCI는 뇌 신호를 해석해 외부 인터페이스로 전달하는 ‘보조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 다른 미국 기업인 싱크론은 경정맥을 통해 신경망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덜 침습적인 시술을 통해 커서 조작 및 통신 기능 구현에 성공했다.

중국은 빠른 임상 적용으로 미국을 추격 중이다. 중국과학원과 푸단대 연구팀은 2025년에 직경 26㎜, 두께 6㎜ 미만의 무선 BCI 전극을 운동피질 표면에 이식해 체스나 스마트기기를 생각만으로 조작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해당 기술의 유연성은 뉴럴링크의 1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BCI 시장은 2025년 약 29억 달러(약 4조 원)에서 2034년 124억 달러(약 17조 원)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침습형 BCI는 언어장애 복원, 로봇 팔 제어, 재활 훈련, 뇌전증·파킨슨병 치료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침습형 기술에 있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비침습형에서는 현대모비스·LG전자·SK바이오팜 등 대기업이 참여해 사고 예측, 수면 모니터링, 뇌전증 예측 기술을 상용화했지만 침습형 BCI는 뚜렷한 성과를 찾기 어렵다. 과학계에서는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국가 차원의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BCI가 의료 현장에 적용됐을 때 해외 의존도가 높으면 치료에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임창환 한양대 교수는 “BCI도 AI처럼 ‘기술주권’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기업이 미가공 데이터를 갑자기 제공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며 “규제를 엄격하게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 기업 기술에 의존하면 우리 언어와 의료 시스템에 맞는 응용 개발에 제약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연구 절차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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