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사고에 정치권 “고령 운전자 조건부 면허” 쟁점화

2024-07-03

고령 운전자 면허 놓고 정치권 논의 다시 불붙을 듯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68세 남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진 충격적인 사고를 계기로,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동안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부정적 여론에 밀려 번번이 법제화되지 못했던 ‘고령자 운전면허 제한’ 방안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회에서 재논의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망자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들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면서 “관계 당국은 사고 경위를 철저히 파악해 유사 사고 재발 방지 및 안전 강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도 자신의 SNS를 통해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많은 시민이 돌아가시고 다치신 너무나 가슴 아픈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관계 당국의 신속하고 철저한 원인 규명을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야당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당국은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조건부 면허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2019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조건부 면허제와 관련한 용역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22년부터 진행 중인 3차 용역 연구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서울대병원 등 7개 기관이 모여 신체 능력이나 질병 등에 따른 ‘운전 부적합자'를 정교하게 걸러내고 조건부 면허를 부여하는 시스템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조건부 면허제는 연령과 질병 등을 고려해 운전 시간이나 장소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야간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게는 주간에 한정해 운전을 허용하거나, 속도감이 떨어지는 운전자에게는 고속도로 통행을 제한하는 식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령 운전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나 특정 연령 집단을 잠재적 위험군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2019년부터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농촌 지역에서는 어르신들이 이동하기가 너무 불편하니까 위험성이 있더라도 면허를 반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 충분한 교통수단이 공급됐으면 좋겠다는 게 간절한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고령 운전자 면허 제한과 관련된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대부분 임기만료로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21대 국회에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교통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65세 이상 운전자가 사고 예방에 효과적인 운행 안전장치를 장착한 자동차를 구매할 경우 그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제대로 된 상임위원회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채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정부 차원의 시도도 있었다. 지난 5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을 발표하며 고령 운전자 운전 자격 관리, 운전 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 운전 허용 범위를 달리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고 실질 운전 능력을 평가해 운전 허용 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했다. 그러나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정치권에서도 설익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결국 해당 정책은 백지화됐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여론의 변화 조짐이 감지되면서 정치권의 반응도 빨라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사고 현장을 방문한 후 “있어서는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며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내지 조건부 면허 발급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운전 페달 오작동 및 오조작 시 기계적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런 장치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고를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해당 차량을 운전한 60대 남성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A씨는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추가 확인을 위해 차량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이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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