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여, 자유를 받아라

2025-02-26

이영옥, 수필가

매년 3월 1일이면 만해 한용운(1879~1944) 묘소에 참배를 올린다. 만해의 추모식은 1971년 한양대 불교학생회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앳된 모습으로 참배를 올렸던 선배가 오늘은 꽃샘추위에 시린 손녀의 손에 핫팩을 쥐여주고 있다. 초등학생인 저 아이가 훗날 제 손주의 고사리손을 잡고 이 앞에 서리라는 믿음이 든든하게 올라온다. 향을 피우고 삼배를 올렸다.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맞춘 불교 유신을 주창했고 ‘불교대전’을 편찬해 일반대중도 불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민족지도자로서의 만해는 일제강점기에 비폭력 만세운동인 3.1독립운동을 이끌어 세계만방에 대한독립을 선포, 독립 쟁취의 초석을 다졌다. 또한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해 우리 문학사 최고의 근대시인 반열에 올랐다.

만해의 일화 중 그가 만주에서 동포들의 사정과 앞날을 의논하며 다닐 때의 일이 있다. 독립군들이 첩자로 오인해 총을 쐈고,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생사의 고비에서 관음보살 친견으로 깨어났고 마취도 없이 목에 박힌 총알을 빼냈다고 한다. 그의 행적이 참으로 기이하고도 담대하다. 만해는 촌철살인의 연설로 좌중을 압도하는가 하면 일본인 형사까지도 파안대소케 하는 달변과 해학을 갖췄다. 스님의 주변은 늘 인파로 북적였고 그들이 증언하는 스님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그중 ‘능동적 실천’을 주제로 한 만해의 강연은 내 마음에 전광석화처럼 날아와 꽂힌다.

“서양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신이여, 자유를 주소서’하고 자유를 구걸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가진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또 존재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이 부자유할 때 신도 부자유하고 신이 부자유할 때 사람도 부자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이여, 자유를 받아라!’하고 나가야 합니다.” -서쌍교 「만해 한용운-고난의 칼날에 서라」 중.

자유를 구걸하지 말고, 스스로 쟁취하라는 뜻으로 능동적 실천을 설파하고 있다. 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실행해야 할 과제인지라 모골이 송연해진다. 선조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내놓으며 독립을 이뤄낸 나라이다. 후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튼실하게 키워 미래의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2025년 벽두에 대통령이 구속되고 국회의사당에서는 협의가 실종됐다. 용산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은 생업을 뒤로한 채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동네마다 상가 폐업이 줄을 잇고 응급실 대란 속 구급차를 탄 산모는 길을 헤맨다. 나라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작금에 만해의 능동적 실천이 뼈에 사무친다.

실천 없는 희망은 망상일 뿐이다. 힘없는 민초들이 나라 구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투표이다. 다가올 주요 선거에 진정성과 실천력을 가진 이에게 한 표를 보내며 나는 이렇게 외치리라.

“신이여, 자유를 받아라!”

묘에 삼배를 올리고 하산 길에 들었다. 총총히 앞서가는 아이의 갈래머리와 고사리손에 들린 태극기에 따끈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참 좋은 날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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