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업·농업인 재정의 움직임과 맞물려 농업경영체 제도를 손질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우선 정부가 ‘농업의 미래산업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소농 구조가 고착화하는 배경에 농업경영체 제도가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농업의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스마트농업·그린바이오·푸드테크는 물론, 농업경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족종사자와 근로자 역시 농업경영체 제도에서 배제되면서 정책에서 소외되는 문제도 제기된다.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함께 농업경영체제도의 문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최우선 농정 과제로 규모화한 전문 농업경영체 육성이 꼽힌다. 하지만 현실에서 농업경영체는 점점 작게 쪼개지고 있다. ‘경영’이라는 표현과 거리가 먼 농업경영체도 적지 않다.
고령의 소농이 은퇴하기보다는 가능한 오래 농업경영체 지위를 유지하길 선택하고, 직불금 수령을 위해 농업경영체에 이름을 올려두고 농사는 짓는 척만 하는 ‘가짜 농부’ 사례도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농업경영체를 재정의해 농정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도모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농업 관련 융자나 보조금을 받으려면 일정한 경영체 정보를 등록한 농업경영체여야 하는데, 이때 농업경영체는 농업인과 농업법인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라 ▲1000㎡ 이상 농지 경영·경작 ▲농업경영을 통해 연간 농산물 판매액 120만원 이상 ▲1년에 90일 이상 농업 종사 등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상 농업인 기준을 충족하면 농업경영체에 등록할 수 있다.
이같은 등록 요건은 1999년 제정된 ‘농업·농촌 기본법’이 2008년 ‘농업식품기본법’으로 전부 개정될 때 도입된 것으로 당시엔 농업인을 판가름할 기준으로서 유효했다.
하지만 최근 부업이나 취미로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게 되면서 진성 농업인을 판별하는 수단으로 적합한지 논란이 불거진다. 특히 최근엔 낮은 문턱이 ‘농업경영체 쪼개기’에 악용되는 등 부작용이 더 부각되는 모양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농업경영체수는 2023년 184만개로, 5년 전인 2019년 169만9000개보다 8.3% 늘었다. 농가수가 100만7000가구에서 99만9000가구로 하락하는 동안 농업경영체수는 정반대 추이를 보인 것인데, 특히 경지면적이 0.2㏊ 미만인 소규모 농업경영체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농업경영체수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없지만 작은 농업경영체만 많아지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문한필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차별적 등록 요건 없이 등록제를 운영해온 데다 농업경영체 등록 때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비농업적 목적의 등록과 기존 경영체의 분리·분할 등록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2020년 공익직불제 도입 후 이런 추세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이같은 분석이 힘을 얻는다. 문 교수가 농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년도 가족종사자가 이듬해 경영주로 신규 등록한 ‘동일 세대 분할 등록’ 추정 사례가 2020년 1651건, 2021년 1506건, 2022년 1213건 발견됐다.
일각에선 이런 현실 때문에 농업예산 등이 미래농업을 이끌 농가에 집중되지 못하고 취미농 등으로 흩어지면서 우리 농업 발전이 저해된다고 지적한다. 고령농이 공익직불금의 소농직불금 등을 수령하기 위해 작은 농지라도 보유하려고 하면서 후속 세대로의 농업자원 승계·이전을 더디게 하는 문제도 야기한다.
대안으로 ‘농업인=농업경영체’ 도식을 깨자는 의견이 나온다. 농업인의 낮은 문턱을 농업경영체 등록기준에 그대로 적용하지 말고, 회사 같은 책임경영의 단위로 농업경영체가 정의될 수 있게끔 기준을 상향 조정하자는 목소리다.
이은영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어업정책팀장은 “농업인으로 인정받으면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각종 조세 감면 등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서 “농업인 기준은 그대로 둬서 현재 혜택을 계속 볼 수 있게 하되 농업의 산업화를 지원하는 농림사업은 농업을 경영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농업경영체를 농업 전후방 산업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농업법인도 농업경영체로 등록할 수 있긴 하지만 생산을 주로 하는 법인과 가공·유통 등 애그리비즈니스(농업 관련 사업)를 하는 법인이 섞여 있어 각각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은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가령 농업생산법인과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농산업법인을 신설하고 확장되는 농업 외연을 포괄할 수 있게 해서 정책대상으로서 이들의 지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