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변호사의 ‘죄와 벌’] 세상 가장 참혹한 범죄 제노사이드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범죄는 단연 제노사이드라고 생각한다. 인종 내지 민족을 뜻하는 그리스어 ‘제노’(geno)와 살해를 뜻하는 라틴어 ‘사이드’(cide)를 합성한 단어 ‘제노사이드’는 특정 민족이나 인종을 대량으로 학살한다는 의미다. 어떤 국가가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는 것은 한 사람으로 치면 사이코패스의 엽기적 살인을 저지른 것 이상으로 패륜적인 행위를 했다는 말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치의 홀로코스트다. 나치는 유대인 600만명을 비롯하여 슬라브인, 집시, 장애인 등 1000만명 넘게 죽였다. 원래는 구덩이를 파고 사살했는데 전쟁 중이라서 총알이 귀했고 매일 너무 많은 사람들을 사살한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자 가스로 죽이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처음에는 피해자들을 가둔 밀실에 트럭의 배기가스를 넣어 일산화탄소 중독과 산소부족으로 죽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다 인공비료 생산으로 인류를 기아에서 구한 ‘하버·보슈법’을 창시한 노벨상 수상자 프리츠 하버가 농업용으로 살충제 ‘치클론B’를 만들자 비용이 더 싸다는 이유로 학살에 살충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프리츠 하버도 유대인이었기에 이내 가족과 영국으로 망명한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벽에는 보면 죽어가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들의 손톱자국들이 무수히 새겨져 있다.
당시 독일은 범정부적으로 협업해서 학살 공장을 돌렸다. 교통부는 죽일 사람들을 철도로 이송하고, 법무부는 학살당할 사람들의 요건을 정하고, 내무부는 학살당할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홀로코스트를 총지휘한 실무 책임자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는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15년간 건설회사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살았으나, 그의 아들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딸과 사귀다 아버지 정체를 드러내는 바람에 이스라엘 모사드에게 납치되어 법정에 섰다. 그가 1962년 사형되기 전 7개월간 받은 재판을 분석한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닌 성실한 관료였다면서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란 테제를 제시했다. 잘못 돌아가는 거대한 사회구조 안에서 인간은 개인의 도덕성 수준과 무관하게 엽기적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유고 내전 중에 있었던 제노사이드 등 중범죄를 재판하기 위해 유엔안보리가 설립한 국제형사재판소가 ICTY(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Former Yugoslavia)이다. 판사 시절이던 10여년 전 이곳에서 펠로우 연구관으로 파견 근무를 했다. 파견 법관으로 선발되었을 때만 해도 국제법 전공자로서 국제재판소에서 일해본다는 것에 설레었으나, 막상 그곳에 가서 매일같이 하루 종일토록 인간이 인간을 도륙한 사진을 보고, 죽은 시체의 해골이나 잘린 팔다리, 몸통을 보고, 증인이 살해 과정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점차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속한 재판부는 보스니아 안에서 세르비아인들이 세운 스릅스카 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카라지치라는 인물을 재판하고 있었다. 사라예보 의대를 졸업하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유학을 한 정신과 의사이자 시집을 8권이나 낸 시인이기도 한 카라지치가 총지휘한 것이 바로 ‘인종청소(Ethnic Clensing)’로 불리는 제노사이드이다.
평범·성실한 관료가 대학살극 이끌어
카라지치의 부하들은 동물을 살처분 하듯이 수백, 수천 명씩을 건물이나 구덩이에 몰아넣고 수류탄을 터뜨리거나 총격을 가해 죽였다. 사라예보를 무장 병력으로 둘러싸서 수년 간 봉쇄한 다음 건물 곳곳에 스나이퍼를 배치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무차별 저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사라예보에 식량이 바닥이 나서 비둘기나 쥐를 먹는 사람이나 아사자들이 속출했다. 내가 본 가장 끔찍한 행위는 한 여름날 학교 교실에 500명을 넣어 놓고 가두어 버린 사건인데, 이들은 선 채로 차오르는 소변을 마시면서 죽어갔다. 수백, 수천 년 전도 아니고, 다른 오지도 아닌, 1990년대 유럽에서 이러한 인간 도륙이 있었다는 증거를 무수히 목격하면서 인류가 어디까지 잔혹해지고 또 비참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워져서 개인적인 자존감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르완다 재판소에서 일하다가 ICTY로 온 재판연구관들의 말을 들어보면, 유고 전범은 르완다 대학살에 비하면 약과라 했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에 100일 동안 80만 명이 학살당했다. 후투족 정부 관계자들이 바퀴벌레 같은 투치족을 모조리 죽이라며 정글에서 나무를 베는 데 쓰는 칼인 마체테까지 나누어 주며 살인을 부추겼고, 그에 따라 이웃으로, 친구로, 가족으로 지내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말로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광기어린 잔혹한 학살이 벌어졌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도 손꼽히는 제노사이드이다. 공산주의자 폴 포트가 크메르루즈라는 무장대를 이끌고 정권을 잡은 뒤, 석·박사, 교수, 판검사, 변호사, 의사 같은 식자층은 다 죽이고, 그 밖에도 손이 고운 사람, 안경 쓴 사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죽여서 4년간 100만 명 이상을 도륙했다. 내가 2016년에 의정부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일할 때 캄보디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씨엠립의 법원장이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39세로 나와 동갑이었다. 법원장이 왜 그렇게 젊으냐고 물으니, 크메르루즈 정권 때 판사가 다 죽어서 나이 많은 선배가 없어져서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거리 시위 적대감·피해의식 폭발 직전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제노사이드로 논란이 있는 사건들이 있다. 제주 4·3 사건도 제노사이드라는 주장이 있고, 경산 코발트 탄광에서 3000여 명이 살해된 사건을 비롯해서 한국 전쟁 중에도 제노사이드라고 주장되는 사건들이 적지 않다.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 그에 동조하지 않으면 학살당하고, 다시 국군이 점령했을 때에는 과거 북한군에 동조했다면 학살당했다. 이청준 선생의 단편소설 ‘소문의 벽’에는 남해안 포구 마을에 공비와 경찰이 번갈아 들어와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밤중에 집에 누군가가 쳐들어와서 어머니에게 전짓불을 쏘이면서 너는 누구 편이냐 묻는다. 한 순간 답변을 잘못하면 바로 사살된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오늘의 진영간 편가르기에도,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의 목숨을 건 편가르기의 여진이,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전짓불의 잔영이 가시지 않은 듯하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사건도 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 있었던 부랑자 강제수용소 형제복지원에서 폭력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확인된 것만 657명이었다. 형제복지원의 원장 박인근은 하사관 출신에다 복싱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사무실에 수갑 30개, 참나무 몽둥이 10개 정도를 비치해놓고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고일 정도로 사람을 폭행했다고 한다. 박인근은 수용자 중에서 소대장, 부소대장 등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수용자들을 통제, 구타하도록 했다. 여성 수용자 중 4분의 1이 성폭행을 당했고, 여성이 임신하면 주사를 놓아서 낙태를 시켰으며, 소대장들이 어린 남자아이들을 성노예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형제복지원을 한국의 아유슈비츠라고 부르는 것도 지나친 과언은 아니다.
제노사이드 사건들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 그 반대다. 죽이는 사람들이나 죽은 사람들에게나 인간의 수명이 100년 미만이라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앞으로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언제라도 인류의 집단적 광기는 산불처럼 갑자기 일어나서 삽시간에 걷잡을 수 번져 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집단 간, 계층 간의 집단적 혐오를 부추기는 일은 그런 산불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어떤 집단 출신이라서 어떻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만연해 있다. 집단의 구성원들 개개인이 각자 다 다를 것인 데도 이 사람은 이런 집단 출신이라 이렇고, 저 사람은 저런 집단 출신이라 저렇다고 한다. 좌파라서, 우파라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MZ라서, 나이 많아서, 사장이라서, 직원이라서, 어느 학교, 어느 지역 출신이라서 등등 끝도 없다. 그 바탕에 적대감과 피해의식이 이글거리고, 그 위로 기름공장에서 라이터를 켜듯이 아슬아슬한 혐오의 말들이 오간다. 필자의 사무실은 서울 서초동의 법조타운 한 가운데 있는데, 법치의 상징인 이곳에도 오전, 오후로 막말과 욕설에 가까운 말들을 마이크와 스피커로 증폭하는 시위가 하루가 멀다하고 열려서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받고 있다. 이게 무슨 민주주의인지, 집회의 자유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때가 많다.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그렇게 무한정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제노사이드를 부를지도 모를, 불장난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정재민 변호사·작가. 23년 공무원 생활 중 절반은 판사로, 절반은 법무부, 방위사업청, 외교부 등에서 일했다. 『보헤미안랩소디(세계문학상수상작)』 등의 소설과 『범죄사회』, 『혼밥판사』등 에세이집을 냈다. 현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 형사사건을 주로 변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