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국격에 대비되는 정치의 품격

2025-11-04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APEC)가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흔히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21개 회원국의 정상 및 대표단과 경제인들이 참석하면서 일부 장관급회의는 부산 등지에서 분산 개최될 만큼 대규모 국제회의여서 지역에서는 통일신라이후 최대의 경사라는 환호성이 쏟아졌다고 한다.

물론 APEC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것은 2005년 부산회의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미·중 무역 갈등과 한·미 간의 관세협상 등 민감한 현안이 놓여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서 이러한 현안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맞이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든 경주 APEC은 세계 속에 문화강국과 IT강국으로서 우리의 위상을 과시할 수 있었고,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미간 관세문제가 타결됐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커다란 성과였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화두(話頭)였던 미·중간 무역 분쟁도 ‘미봉책 수준’이라는 일부의 평가가 없진 않지만 타결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경주 APEC에 의미를 더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정부 인사들과 경제인들이 보인 단합된 노력은 ‘경주회의’를 빛나게 했고, 우리의 위상(位相)과 국격(國格)은 높아졌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국제행사를 치르는 동안에도 우리 국내정치는 여야 간의 저급한 정쟁(政爭)과 상호 비난 속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더욱이 경주회의가 열리는 기간은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살림살이와 활동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는 ‘국정감사’의 막바지에 해당되는 시기였다.

국정감사는 여야를 떠나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사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여야는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떠나 국민의 대표로서 일체성(一體性)을 갖고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는 어느 때부터인가 국감장은 대정부 질문보다는 여야 간의 고함이 충돌하는 싸움터로 변화했고, 정부를 상대로 한 질문다운 질문은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예전에는 우리 국회의 모습이 이러하지는 않았다. 물론 여야 간의 대립과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국정감사에서는 여야를 떠나 정부의 실정(失政)을 찾아내 비판했다. 또 이 과정에서 이른바 ‘국감의 스타’가 등장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고 훗날 정치거물로 성장했다.

굳이 여러 사람을 거론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소속정당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조순형 의원은 ‘Mr.쓴소리’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족경제론’을 출간할 때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세 아들을 국회의사당에서 결혼시키면서 계좌번호가 적힌 청첩장을 돌렸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적어도 민주화 이후 역대의 국회의장들 역시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소속정당의 추천으로 의장이 됐음에도 가급적 중립적 입장에서 여야간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날 여야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에는 너무도 멀리 있지 않나 싶다.

작년 12·3비상계엄사태 후 오늘이 있기까지 적어도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국민의힘’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원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적어도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해 집권의 기회를 되찾기 위해서는 비상계엄사태를 초래한데 대한 반성 위에서 합리적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다.

오직 집권 민주당의 실수를 기대해 지지세를 회복하려는 방식으로 정권을 되찾겠다는 억지가 오늘날 우리 정치의 퇴영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집권 민주당 역시 아무리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정당일지라도 야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정치(政治)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싫든 좋든 우리는 모두 같은 국민이며, 어려운 국제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함께 힘을 모아 그 파고(波高)를 헤쳐 나가야 할 동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정치다운 정치, 품격 있는 정치’가 도모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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