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정황이 드러나면서 때 아닌 정교분리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국무회의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불법 자금으로 이상한 짓을 하는 종교 단체의 해산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여권 인사들까지 로비를 받은 의혹이 제기되자 야당도 역공세에 나선 모습입니다.
말 그대로 그동안 통일교가 한국 정치를 좌우했나 싶을 만큼 국민들은 싸늘한 데 정치권에선 누구 하나 반성하기보다 서로 ‘나는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통일교 정체가 무엇이었기에 이처럼 한국 정치가 종교에 끌려왔는지 싶습니다.
통일교 로비했다는데 與野 모두 ‘나는 아니다’
통일교가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집단으로 실체를 드러낸 것은 2003년 천주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했을 때 입니다. 초대 총재이자 통일교의 상징과 같았던 문선명 전 총재가 1954년 통일교를 창시한 후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워 유력 정치인들과 접점을 만들어 영향력을 키워왔지만 2003년 정당 창당은 정치참여의 분기점이 됩니다.

2003년 선거 불참으로 해산됐지만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평화통일가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당했습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도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했지만 평화통일가정당은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고 정당 지지율 3%만 받으면 원내 입성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으로 선거운동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통일교의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개신교가 통일교의 국회 입성을 막고자 기독교 정당을 창당하는 것은 통일교와 기독교 관계를 보여주는 일례이기도 합니다. 선거 초기 국면에서는 기독교에서도 두 정당이 등장했는데 최수환 장로가 창당한 ‘기독당’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청교도영성훈련원 대표 전광훈 목사가 창당한 ‘사랑실천당’이었습니다. 전광훈 목사도 이 당시부터 정치참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보수 기독교계의 정당운동은 1980년대 말 통일교의 <세계일보> 창간 소식에 개신교가 <국민일보>를 창간해 맞대응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통일교 언론·정당운동
세계일보 창간·정당창당
당시 평화통일가정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합쳐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했지만, 단 한 석도 얻지 못했습니다. 245개 지역구에서 받은 표는 모두 33만4715표(득표율 1.94%)에 그쳤고 정당 득표율 역시 1.05%(18만857표)로 기독당 2.59%(44만3775표)보다 한참 낮아 결국 다시 해산됩니다.

이후 전략은 정당운동이 아닌 정치로비였습니다. 헌금을 기반에 둔 재정적 여력을 활용해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교세를 넓혔습니다.
집단의 신뢰는 굳건했고 정지인들도 통일교라는 이름이 아닌 기업(옛 용평리조트, 세일여행사, 디오션리조트, 일화, 일신석재 등)이나 언론(세계일보, 미국 워싱턴타임스, UPI통신, 일본의 세카이닛포)을 비롯해 교육·문화(선문대, 선화예술중고, 청심국제중고, 유니버설발레단, 리틀엔젤예술단) 등의 이름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용평리조트·선화예술·유니버설발레단
통일교 이름 뒤에 기업·교육·문화 사업
미국 워싱턴타임스 존 살로먼 편집인은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 붕괴에 워싱턴타임스가 기여했다고 말했다”면서 “백악관에서 매일 새벽, 회사로 직접 찾아와 워싱턴타임스를 갖고 가 레이건 대통령의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는 회고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워싱턴타임스는 대통령이 보는 신문으로 명성을 날렸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통일교가 독특한 종교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이른바 사이비종교들과는 달리 사회에 융화된 측면이 있었던 셈입니다.

첫번째 변곡점…문선명 사망

통일교의 중대한 변곡점은 2012년 9월 3일 문 전 총재가 사망이었습니다. 이후 후계 구도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문 전 총재는 유언을 통해 통일교 교회를 7남 문형진에게 승계시키며 “어머니(한학자 총재)와 하나가 돼야 한다”는 원칙을 덧붙였지만 한 총재는 이보다는 ‘독생녀(獨生女)’의 위치를 공고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문 전 총재가 ‘완전한 아담’이고, 한 총재는 ‘완전한 하와’라는 게 통일교 교리의 골격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논리상 성립할 수 없는 교리이지만 문 전 총재 사후 한 총재 우상화는 가속이 붙습니다.
한학자 우상화…‘평화의 어머니’

사례를 들자면 2020년 출판한 한 총재 자서전 <평화의 어머니>(김영사)에서는 한 총재의 외가 쪽 선조인 조한준이라는 인물이 평안도 정주에 달래강이라는 강에 민초들이 힘겹게 인간 다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전 재산을 털어 돌다리를 놓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돌다리를 만드는 데 전 재산을 다 쓰고 엽전 세푼은 준공식에 참석할 짚신을 사기 위해 나눴는데 그날 밤 꿈에 “너희 가문에 천자를 보내려 했는데, 엽전 세푼 탓에 공주를 보내겠다”라고 해 다음날 달래강가로 가보니 돌미륵이 생겼다는 일화를 전합니다. 그 공주가 한 총재라는 식입니다.
통일교에 줄서는 전 세계 정치인
트럼프 통일교 강연료 200만달러

이 같이 한학자 중심의 통일교 기조에 아들들은 극렬하게 반발하며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데 한 총재 입장에서는 더욱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통일교는 더욱 집요하게 정치권에 입김을 강화합니다. 2020년 8월 열린 ‘신(神)통일세계 안착을 위한 온라인 희망전진대회에 메시지 및 연사들의 명단만 봐도 통일교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축사에 나선 인사들을 나열하자면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 위원장, 뉴트 깅리치 미국 전 하원 의장, 다테 주이치 일본 전 참의원 의장, 훈센 캄보디아 총리,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브리지 라피니 니제르 총리, 지미 모랄레스 전 과테말라 대통령,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 등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를 마친 뒤 통일교측으로부터 200만달러(약 25억 4000만 원)의 강연료를 받은 것도 유명한 일화로 꼽힙니다.
같은 해 5월엔 문선명·한학자 총재 성혼 60주년 기념 특별집회에서 한 총재는 단체 명칭 앞에 ‘하늘부모님 성회(聖會)’, 영어로는 ‘Heavenly Parent’s Holy Community’를 추가하면서 “정계·종교계·재계·사상계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한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하늘부모님 성회’로 발표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정계 뿐만 아니라 재계, 사상계까지를 모두 묶겠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두번째 변곡점…아베 신조 사망
이 같은 사례는 통일교의 외연확장의 한 사례에 불과할 뿐 전세계 정관계에 손을 뻗으며 ‘포스트 문선명’체계는 자리를 잡아갔지만 뜻밖에 돌발 변수가 생깁니다.
바로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살 사건입니다.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총격범은 경찰 조사에서 통일교에 대한 원한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입교한 후 무리한 헌금을 반복하다 집안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통일교에 대한 원한을 키워가던 중 아베 전 총리를 죽이기로 결심했다는 것인데, 아베 전 총리가 일본 내에서 통일교의 교세 확대에 도움을 준 정치인으로 봤다는 게 그의 진술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일본에서는 재단법인 해산명령을 했다는 것 같다”고 지적한 게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 문부과학성은 2023년 10월, 법원에 일본 내 통일교 해산 명령을 청구했고 지난 3월25일 도쿄지방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통일교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통일교 측은 항고 상태지만 상급심에서도 해산이 받아들여질 경우 일본 내 통일교 교단 해산은 현실화 됩니다. 그만큼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은 일본 내에서 통일교의 뿌리가 흔들릴 만큼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아베를 통해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리며 정치권 로비에 집중했다면 한국에서는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통해 통일교의 숙원을 국가 정책으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한 시기가 됩니다. 특검이 김건희씨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청탁 시도가 ‘정치와 종교 분리 원칙(헌법 제20조)’을 어겼다고 지목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4~7월 김건희씨 선물 명목으로 6000만 원대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2개(합계 2000만 원 상당) 등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 캄보디아 개발사업, YTN 인수 시도,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 각종 통일교 현안을 해결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성동, 한학자에 큰절…세뱃돈 100만원 수령 의혹
국민의힘에도 로비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윤 전 본부장과 전성배씨가 2023년 3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권성동 의원을 밀어주기 위해 통일교 교인들을 세력화해 동원했다고 의심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고, 이 과정에서 권 의원이 한 총재에게 큰절을 했다는 의혹도 터져나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윤 전 본부장이 “한쪽으로 치우쳤던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어프로치(접근)했다”며 여권 로비 의혹을 폭로하면서 통일교 삭풍이 여권으로 방향을 틀어 몰아닥치고 있습니다. 직격탄을 맞은 전재수 의원이 현 정부 첫 장관에서 사퇴하고 압수수색을 받았습니다. 전 의원은 통일교 측에서 4000만 원과 명품시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이른바친명계 ‘7인회’로 꼽혔던 임종성 전 의원도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돼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허위 사실”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가운데 이 대통령은 "여야 관계없이 엄정 수사하라"며 정면 돌파를 택했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정권에 최대 뇌관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힘·통일교…여권에 반격 ‘이재명 게이트’
통일교 해산을 명한 이 대통령에게 통일교가 반격을 가한 셈인데, 이 대통령도 멈출 기세가 아닙니다. 국민의힘은 통일교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출마한 대선과 국민의힘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등에 교단 차원의 조직적 당원 가입과 지원 등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이번 사건이 ‘이재명 게이트’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야당의 자신감은 여당 유력 정치인들도 통일교 로비에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 역시 자신감이 넘칩니다. 여권 관계자는 그 자신감이 성남일화 축구팀을 성남FC 시민구단으로 만들었던 데서 찾았습니다. 성남일화 축구팀 역시 통일교 재단의 소유였지만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이 시민구단으로 전환시킵니다.

성남일화→성남FC 시민구단
통일교 고리 끊은 성남 시장
폭 넓고 깊게 전방위적인 통일교 로비에서 이 대통령은 여권 인사까지 포함됐을지라도 이를 잘라내고 통일교 해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해당 관계자는 성남FC를 보라했습니다. 당시 구단 운영의 자금 문제가 컸던 것도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는 요인중에 하나였지만 지역 연고팀이 특정 종교와 연계됐다는 점을 문제시했던 이 대통령은 이를 단칼에 정리해버렸다고 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통일교는 이 대통령과는 거래가 안된다고 인식해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올인’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이는 성남FC에 광고비 집행을 두고 검찰이 이 대통령 발목을 잡았던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 대통령의 종교재단 해산 지시가 단순히 통일교 문제로만 비춰지지 않는 배경입니다. 통일교와 맞물린 수 많은 행위자들은 앞으로 가만히 있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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