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스펙 안봐…'열린 채용'이 R&D 혁신 견인"

2025-11-12

“미국의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업인 팰런티어테크놀로지스가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뽑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실험을 한다는데 주성은 20~30년 전부터 인성과 열정 등만 보고 신입 사원을 선발했죠. 학력·전공·경력·성별 등 기존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열린 채용’을 통해 연구개발(R&D) 엔지니어 등 인재로 키워왔습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에도 여전히 학벌 위주 문화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 크다”며 “학교에서는 자기만의 논리와 철학을 길러주고 기업에서는 신입 직원을 뽑아 기술자 등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주성은 공대나 석박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인문계고와 상업계고·공업계고·전문대를 가리지 않고 선발해 ‘온리 원(Only 1) 혁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진으로 성장시킨다”며 “혁신은 학력·경력보다 현장의 기술에 영감을 더해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황 회장은 매일 오전 7시 30분 용인 R&D센터에서 엔지니어 등 임직원들과 돌아가며 공유의 시간을 갖는다. 파트별로 돌아가며 늘 바뀌는 30~40명의 실무 담당자 중에는 고교와 전문대 출신도 상당수다. 황 회장은 이들로부터 공정 문제와 장비 혁신, 실험 결과 등에 관한 발표를 듣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R&D, 생산·품질, 영업, 기획 등 모든 부서의 상황을 공유하며 협업의 토대를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황 회장은 “30여 년간 매일 아침 몇 시간씩 하는데 보고받고 감시하는 회의가 아니라 3~5년 차 또는 신입 사원한테 내용을 듣고 표준화와 협업을 위한 공유의 시간을 갖는 자리”라며 “책에 안 나오는 논리와 철학 방법을 알려주고 제품 설계부터 테스트, 고객 대응까지 기록해 암묵지를 공유 자산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과 지도에 없는 것을 하도록 목표를 만들어주고 혹시 안 해도 되는 고생만 하는지, 해야 될 일을 제대로 하는지 구분해 기준을 수립하고 올바른 방향 설정을 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R&D 인력 비율이 70% 가까이 되는 주성이 세계 최초 기술 27개와 특허 3300여 개를 갖고 있는 혁신 기업이 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황 회장은 ‘지식에다가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한 감각인 오감(五感)을 더하면 기술이 되고 다시 기술에 영감(靈感)을 더하면 비로소 혁신이 이뤄진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학력이나 스펙에 대한 환상을 전혀 갖지 않고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 주성이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면접을 볼 때 엉뚱한 얘기나 그때그때 다른 질문을 하지만 인성·열정·인내심·생활관만 보고 사람을 뽑죠. 올바른 의식을 정립하면 저절로 자기 계발과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의식이 잘못되면 소용없어요. 그런데 대체로 기업에서는 서류 전형에서 스펙을 많이 보니까 능력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저희는 혁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니까 경력자가 필요없습니다.”

황 회장이 일찌감치 능력은 학벌과 비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처럼 AI 빅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각광받는 팰런티어의 알렉산더 캐드먼 카프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능력주의 펠로십’을 통해 고교 졸업생 22명을 선발해 정규직 전환 실험을 하고 있다. 고교 졸업생들은 1개월간 서양 문명과 미국 역사, 사회운동 등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에 참여한 뒤 3개월 동안 병원, 보험사, 방산 업체, 정부 기관 등과 접촉한다. 이 기간 월 5400달러(약 790만 원)를 받는데 우수 수료자들은 정규직의 기회를 잡게 된다. 카프 CEO는 철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법학석사와 독일 괴테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대졸자 채용은 그저 진부한 말만 해왔던 사람들을 채용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대학 무용론’을 설파한다.

황 회장은 팰런티어의 실험과 관련해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혁신가가 되는 게 결코 아니다”라며 “오히려 대학이나 전공의 틀에 갇히면 고정관념이 생겨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대학과 초중고에서는 여전히 과거 모방경제에서나 통할 만한 지식 쌓기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AI 시대에 교육 현장에서 지식만 습득해서는 의미가 없고 차별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기업들도 차별화된 직원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이 키워 놓은 인재를 빼가려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경력자 위주로 직원을 뽑는 것은 혁신을 하지 않고 모방·관리하겠다는 겁니다. 국가적으로도 프로 스포츠처럼 기술자를 육성·보호하고 가치를 증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그는 “주성의 연구원은 600여 명이지만 경쟁사들은 몇 만 명의 임직원을 보유하고 있다”며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리더가 5년가량 앞서 움직이고 판을 바꾸는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성이 실리콘 웨이퍼(기판) 위에 더 많은 칩을 집적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반도체 역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3-5족 화합물 반도체를 유리기판 위에서도 양산할 수 있는 ALG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생존을 위해 혁신을 꾀한 결과다.

초대 벤처기업협회장과 초대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뒤 현재 한국발명진흥회장을 맡고 있는 황 회장은 “저성장 고착화와 중국의 급부상, 자국우선주의 심화와 공급망 분리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혁신 인재를 키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함께 잘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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