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불참으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이번 협상 국면의 최대 수혜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무기 삼아 국제사회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체급을 키우고 있는 데다, 이를 통해 국내 정세 불안을 잠재우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15일(현지시간) 국제적으로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며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국면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적극적으로 거들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역제안을 푸틴 대통령이 거절하면서 이번 협상에서 종전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작아졌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판은 쪼그라들었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신경전이 이어지는 동안 전 세계 이목이 협상장인 튀르키예에 집중됐다는 게 더타임스의 분석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영향력을 키운 건 그가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해온 덕분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에는 군사 물자를 지원하고,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는 데도 역할을 해오면서 러·우 모두와 신뢰 관계를 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 1기 때부터 친분을 쌓아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스탄불 사반즈대 버크 에센 교수는 “조 바이든이나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 정도로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튀르키예는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억류하고 있던 인질 에단 알렉산더가 석방되는 과정에서도 중재 역할을 했다. 오는 16일에는 이스탄불에서 이란과 유럽의 핵 협상도 개최한다.
외교적 위상을 높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내 문제 대응 측면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튀르키예에선 올해 초 야권 유력 대권 주자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체포되면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경기가 악화해 물가가 상승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 문제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짚었다.
중동연구소(MEI)의 오눌 툴 국장은 튀르키예 국민이 여당에 대해 여전히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분야 중 하나가 외교 정책이라며 “에르도안이 국제사회의 갈등에 개입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다만 툴 국장은 “튀르키예가 러·우 평화 회담을 개최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진 않으며 당사자들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며 실제 영향력은 제한적이란 점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