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배임죄 잇단 기소에
경영전략적 결정 위축 우려 감안
“판례·법리 판단 무혐의 신속종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공직자나 기업인의 업무상 의사결정에 관한 사건을 수사할 때는 관련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과잉수사를 자제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법무부는 29일 정 장관이 대검찰청에 이러한 내용의 ‘공직수행 및 기업활동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한 사건 수사 및 처리 시 유의사항 지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정 장관은 “공직자, 기업인 등 사건 관계인의 진술을 충분히 경청하고, 축적된 판례에 비춰 관련 증거와 법리를 면밀하게 판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고발 등 수사단서 자체로 범죄 불성립이 명백한 경우에는 신속히 사건을 종결하라”면서 “공직 수행 및 기업활동 과정에서의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 충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지시는 정책 결정이나 기업 경영에서 전략적 판단이 사후적으로 직권남용죄나 배임죄로 수사·기소되면서 소극 행정이나 기업 활동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 타인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규정한 형법 123조가 포괄적이고 불명확해 실제 이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직권남용죄가 논란이 된 것은 문재인정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적폐 청산’ 수사부터다. 당시 여러 공직자가 직권남용죄로 기소됐으나 무죄 판결이 여러 차례 나오면서 검찰이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검찰은 41개의 직권남용 관련 혐의를 적용했으나 지난해 1월 1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됐다. 2015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8명도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통령실은 직권남용 관련 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봉욱 민정수석은 24일 “외국의 입법례를 검토해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남용될 여지를 줄이는 쪽으로 입법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 관련 법이 개정될 경우 3대 특검이 수사 중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소된 사건에서 관련 형법이 개정되면 재판부는 경과 규정 등을 참고해 심리한다. 내란 특별검사팀(특검 조은석)은 윤 전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기소하면서 직권남용 혐의를 포함시켰다. 채해병 특별검사팀(특검 이명현)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안경준·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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