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더 블루, 고금화 개인전
한국적 정체성의 상징 ‘색동’
선명한 색 대비와 대칭적 패턴
천의 유연성·색동의 직선 매료
자연의 조화와 절제된 삶 내포
선조들의 뜻 이어나가고 싶어
현대미술로의 재해석
‘콩주머니’처럼 원 오브제 제작
프레임 표면은 색동천으로 장식
한땀=점, 문양=선, 선 집적=면/섬유공예 가치 확장한 작품 70점
공예는 실용성에 방점이 찍히고, 현대미술은 개념이나 철학적인 가치 또는 시각적인 표현을 중시한다. 서로 접점 없이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던 두 분야가 언제부턴가 서로의 특성과 강점을 수용하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현대미술은 공예의 세밀한 기술과 전통적 아름다움을 흡수하며 독창성을 강화하고, 공예는 현대미술의 개념적, 실험적 접근을 도입해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한다. 공예와 현대미술의 융합에 의한 경계 허물기는 예술의 다변화, 전통의 재해석, 기술 및 재료의 발전 등에 의해 가속화됐다. 이는 곧 각 장르의 영역 확장으로 이어졌다.
고금화 작가는 직물, 실, 천, 종이 등 다양한 섬유 재료에 작가적 철학을 추가하며 미적 가치 확장을 모색해왔다. 이는 곧 섬유공예의 현대미술로의 재맥락화와 맞물렸다. 갤러리 더 블루에서 진행 중인 그의 ‘고금화 초대’전에 섬유와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결합한 작품 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고금화는 지난 30여 년 간 직물, 실, 바느질을 매개이라는 섬유공예의 요건들로 조형성과 의미성의 통합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다양한 연작들을 발표해왔지만 이번 전시엔 신작들의 존재감이 충천한다. 솜을 색동으로 감싼 원 형태의 오브제들을 사각 틀에 올리고, 틀 표면엔 색동천을 조형적으로 조성한 작품이다. 사실 색동 직물은 전작들에서도 조금씩 사용됐다. 이번 전시에서 색동을 증폭했다. 그가 “아이들의 놀이 도구인 전통 콩주머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색동에 주목한 것은 20여년 정도 됐다. 색동에서 한국 전통의 색채 미학과 개념적 가치를 발견하면서 작업의 일부로 차용했다. “한국 고유의 심미적 가치를 담고 있어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의 상징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색동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독특한 조형적 매력을 재창작하기 시작했다.
색동의 핵심은 색의 조화와 대비다. 색동은 청, 적, 황, 백, 흑 등의 오방색 또는 여러 색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시각적인 리듬감을 형성한 특징을 가진다. 각 색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개별적으로도 독립적인 미를 제공하기도 하고, 직선적이고 대칭적인 구성이 갖는 패턴의 반복성으로 안정감과 질서를 표출하기도 한다. 특히 천의 유연성과 색동의 직선적 구성의 대비는 독특한 조화로움으로 이끌었다.
선조들은 색동에 시각적인 아름다움 못지않게 상징적인 의미에 주목했다. 색동에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화하는 방식으로 우주와 자연의 조화를 추구했다. 특히 개인보다는 공동체적 가치를 색동에 상징화했다. “시각적이고 의미적인 완결성으로 색동은 어린이나 결혼하는 신부의 옷소매나 장식에 사용되어 건강과 번영 등의 길사를 기원하는 벽사로 활용됐습니다.”
한국적 정체성의 상징인 색동 문양은 고금화에 의해 재해석 과정을 거쳤다. 그에게 색동은 미술적인 표현을 위한 하나의 물성으로 기능했다. 물감의 자리에 색동직물을 위치시키는 것. 색동으로 다양한 규모의 입체적인 원을 만들고 사각 틀에 조형적으로 배치한다. 색동 직물 등은 색동 오브제와 어우러지게 표면에 붙였다. “제게 색동은 조형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완벽한 언어로 다가왔습니다.”
물감과 붓의 작용을 완전히 배제했지만 결과물은 완벽한 현대미술이다. 그의 섬유공예들이 공예를 넘어 현대미술의 범주로 이끄는 장치는 점, 선, 면이다. 바로 미술의 기본 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진 것. 바느질의 한 땀이나 드로잉의 한 획은 점이 되고, 직물의 문양이나 바느질선, 드로잉 선은 선이 된다. 그 선들의 집적은 면으로 확장된다.
미술의 기능적인 요건 못지않게 그의 작업에선 개념적인 장치들도 탄탄하게 구축된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고, 현상보다 근원에 집중했던 전통 동양의 철학을 사유한다. “선조들은 작은 생활용품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부합하는 절제된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정신을 현대로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첫 작업은 전통보자기를 현대적인 미감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면, 삼베, 비단 등의 천 조각들을 바느질로 이어 붙여 보자기의 형태를 만들고, 염색을 하거나 보자기의 일부에 모란이나 연꽃 등의 전통 꽃들을 드로잉 하거나 바느질에 사용하는 전통문양의 골무나 전통매듭, 복주머니 등을 오브제로 붙였다. 이후 현대의 섬유인 린넨과 전통 직물인 색동천을 조합해 만든 오브제를 활용하는 작업 등 다양한 변주로 이어왔다. 이번 전시엔 그의 전작들도 시기별로 전시돼 있다.
천 자체에 염색된 색이나 자체 염색으로 색을 내고, 오브제나 드로잉으로 조형감을 구축하지만 점, 선, 면이라는 미술의 기본요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미학의 근원은 한국의 전통에 있다. 전통미학을 기반으로 글로벌한 현대미술로 나아가는 것이 그의 섬유공예가 지향하는 바다. 그가 전통적인 가치에 일찍 눈을 뜬 데는 그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이 컸다. “친정집이나 시댁이 전통을 지키려는 의식이 강했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것을 많이 본 것이 제 작업의 출발이 됐습니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도자와 목칠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런 이력들은 그의 작업이 다채롭게 확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조각보, 한복, 가구 등 전통생활용품을 오랫동안 수집한 것이 전통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기반이 됐다. “수집한 전통조각보는 보존의 대상이어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직접 조각보를 제작하다 지금의 작업으로 연결됐습니다.”
전통은 말 그대로 전통이다. 이미 과거의 유산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내면에 전통의 유산들은 면면이 이어져 있다. 관건은 어떻게 현대적인 감수성으로 치환하느냐다. 전통이 현대미술이 되기 위해서는 개별성의 옷을 벗고 보편성의 가치로 거듭나야 한다. 그는 콩주머니를 재해석한 색동에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우주”를 대입하는 방식으로 보편철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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