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반발·욕설 메시지에도 표현 멈추지 않아
“담화에 더 분노…국민에 총부리 겨누는 대통령 필요치 않아”
검은 화면이 눈앞에 보인다. 다음 장으로 넘기니, 사람 어깨 형태가 보인다. 다음 장에는 얼굴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형태다. 장을 넘길수록 윤 대통령은 내려간다. 공간엔 흰 공간만 남는다. 그림을 그린 재수 작가는 “교활하고 비겁한 시커먼 속에서 나가려면 그를 내려야 한다. 쓰거나 그릴 수 있는 백지는 그때부터다”라고 남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용자들은 “얼른 끌어내려야죠” 등 반응과 촛불 이모지를 댓글로 남겼다.
구독자 감소를 무릅쓰면서까지 12·3 계엄 사태를 비판하고, 윤 대통령 탄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낸 창작자들이 있다. 탄핵 촉구 메시지를 올리자 일부 이용자가 테러에 가까운 욕설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재수의연습장(@jessoo)’ 계정을 운영하는 재수 작가, 정우열 작가(@olddog), 하태완 작가(@letterwoan)를 지난 13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작가들은 “지금까지 독자들과 쌓아온 관계를 믿는다”며 “지금은 분명히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작가들은 지난주부터 이번주까지 꾸준히 SNS에 12·3 비상계엄, 윤 대통령 탄핵에 관한 글·그림을 업로드하고 있다. 이들은 평소 SNS에 만화를 올리거나, 이미지와 함께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을 주로 올린다. 반려 동물 사진도 올린다. SNS 계정은 작가들이 독자와 소통하고, 책 발간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큰 채널이다. 수익 창출도 일부 가능하다.
평소와 다른 ‘정치적’ 콘텐츠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들은 이런 반발에 맞서고 있다. 하 작가는 지난 9일 “주된 소재였던 사랑과 용기, 평화가 극악한 몰상식에 억압받는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쓰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며 “쓰는 일이, 예술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소리 높여 화내야 할 때 삼켜야 하냐”고 적었다. 재수 작가도 지난 9일 “나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창작자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이라며 “뉴스를 공유하는 것 가지고 피곤하다는 말에는 화를 내기도 아깝습니다. 지금은 화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라고 올렸다.
팔로워가 줄어들 우려도 있다. 그런데도 표현은 멈추지 않았다. 하 작가는 “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게다가 이번 사태는 정치적 중립을 떠나 계엄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목소리 높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의사 표시를 이유로 팔로우를 취소한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지난 12일 윤 대통령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 담화를 보고 더 분노했다고 말했다. 재수 작가는 “‘담화’라는 부드러운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한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 작가는 “국정을 운영해야 할 위치에서 어떻게 내란에 해당하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왜 이후에 담화에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말만 늘어놓았는지, 이미 민주주의를 유린당한 역사가 있는 민족에게 감히 같은 아픔을 또 안긴 것에 대해 할 말이 고작 그것뿐이었는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14일 국회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다. 정 작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며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되든 당장의 안위만 쫓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하시라. 하지만 정치 말고 다른 직업을 찾으시라”고 말했다. 재수 작가는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그걸 통치행위라고 말하는 대통령은 필요하지 않다”며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권력을 위한 선택인지 잘 판단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