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수능’이라 불리는 어려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수험생 부담을 키운다고 여겨집니다. 교육계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인사들의 상당수는 특히 ‘어려운 수능’을 배격합니다. 수능 난이도가 올라가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사교육비 지출을 늘릴 여력이 있는 가정배경의 학생들이 유리해져 교육 불평등도 커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올해 불수능을 경험한 수험생들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최근 몇 년간 수능 출제의 전반적 기조는 ‘쉬운 수능’ 내지는 ‘수능 힘빼기’에 가까웠습니다. 보수-진보 정부 할 것 없이 말이죠. 초고난도 문항인 ‘킬러문항’ 폐지, 수능 영어 절대평가화, 응시과목수 축소 흐름이 쉬운 수능 기조를 반영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매해 “수험생의 과도한 부담 완화”에 초점을 두고 수능을 출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23일 공개된 국회입법조사처의 ‘한국사회 불평등의 현주소-2025 대한민국 불평등 종합보고서’에는 조금 다른 관점의 분석이 제시됩니다. 440쪽 분량의 보고서는 소득, 자산, 건강, 교육 등 여러 분야의 불평등 현황을 다룹니다. 이중 교육 파트에선 쉬운 수능이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를 늘리며 교육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우선 보고서는 “재수 반수 등 ‘재도전 기회’를 선택할 확률이 가정배경이 양호한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10년 전에 비해 선명해졌다”고 지적합니다. 근거는 학술지 ‘교육사회학연구’에 올해 실린 논문 ‘대학 진학 선택의 불평등 실태와 변화: 재수·반수 선택의 계층화를 중심으로’(2025)입니다.
해당 논문은 2010년과 2020년 고3 중 재수와 반수를 선택한 집단의 월 평균 가구소득이 각각 471만5000원→725만1000원, 448만7000원→659만4000원으로 증가했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합니다. 재수·반수에 도전하는 학생의 월 평균 가구소득이 253만6000원·210만7000원씩 증가한 셈인데, 이는 전체 고3 학생의 가구 소득 증가폭(179만2000원)보다 큽니다.

연구진은 이같은 현상을 학계에서 제시됐던 ‘특권화된 실패’라는 키워드로 설명합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든든할수록 자녀가 재수·반수를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서는 재수·반수 선택이 계급화된 현상을 인용하며 “수능의 난이도 조정은 재수나 반수 선택의 기회가 있는 개인의 부담을 덜어준다거나 오히려 경쟁력을 높이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지적합니다. 쉬운 수능일 때 사회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에겐 재수·반수 선택이 상대적으로 ‘쉬운’ 결정이 될 수 있다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비용을 들여 재수나 반수를 하면, 그만큼 성적을 올리기가 유리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죠. 반면 매해 비용이 올라 연간 3000만원 넘게 들어가는 재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겐 재수 선택의 문턱이 더 높아진 상황입니다.
보고서는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상대적으로 쉬운 수능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재수·반수생이 유리해진 대입 지형을 두고 과연 ‘교육불평등’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냐 하는 것입니다. 학교 단위에서 이뤄지는 공교육 과정의 불평등이라기보단, 부모의 배경이 재수·반수 선택에 영향을 줬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재수·반수 선택과 수능 난이도를 둘러싼 영역에선, 부모세대의 자산과 소득 불평등이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교육 불평등’의 실제 모습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육 불평등’ 가정배경의 영향 줄이려면?
그렇다면 실제 교육 불평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어떨까요. 보고서는 아래 네 가지 지표의 경향성을 통해 한국의 교육불평등 추이를 살펴봅니다. 네 가지 지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성취도 차이를 설명하는 정도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등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생의 학업성취도 사이 관계를 숫자로 설명합니다.
①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중 학생 개인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ESCS)
②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향이동성 지수
③ OECD 유리바닥 지수
④ OECD 개천용 교육 불평등 지수
보고서는 ①~④ 지표를 토대로 공통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OECD 평균과 유사하거나 OECD 평균보다는 한국의 교육 불평등 수준이 나쁘지 않지만 최근 들어 악화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중 ESCS(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tatus)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ESCS는 가구의 경제적 자원, 부모의 학력과 직업, 도서와 학습자원 등 문화적 자본 등을 종합해 산출되는 지표입니다. 보고서는 2003년부터 2022년까지 ‘ESCS의 수학 성취도 설명량’을 제시합니다.
ESCS가 수학 성적을 설명하는 비율이 한국은 2003년 11%에서 2022년 12.6%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17.9%에서 15.5%로 감소했습니다. 한국에서 학생의 수학 성적에 부모의 배경이 미치는 영향이 증가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는 낮습니다.
학업 성취도 상위 25%인 학생 중에서 ESCS 하위 25%인 학생들의 비율을 측정한 값인 ‘상향이동성 지수’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이 나타납니다. 한국의 읽기·수학·과학 상향이동성 지수는 2006년 13.4에서 2022년 10.5로 감소했습니다. OECD 평균은 같은 기간 9.5에서 10.5로 소폭 증가했는데, 한국은 2022년 기준으로 OECD 평균과 같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 교육을 불평등의 근원으로 지적해왔지만 교육불평등 지표가 악화되는 건 최근의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이는 통념과 달리 공교육이 교육불평등 악화를 막는 본연의 역할을 비교적 최근까지 해왔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보고서는 최근 한국의 각종 교육 불평등 지표가 악화되는 이유로 코로나19 시기 등을 언급하며 ‘공교육이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이야기합니다. “입시 제도 이전에 공교육이 가정배경 요인을 상쇄시킬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와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교육 불평등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 적절한 접근”이라는 것이 입법조사처 보고서가 함축하는 결론입니다.





![[기자수첩] 회계기준원장 선임 뒷말들, 정치는 ‘누가’ 하는가](https://www.tfmedia.co.kr/data/photos/20251252/art_17667342934979_1b3cfb.jpg)


!["지긋지긋한 가난? 이게 웃겨?"…라면·김밥에 페라리 사진 올린 '가난 챌린지' 논란 [이슈, 풀어주리]](https://newsimg.sedaily.com/2025/12/26/2H1VQZA5QH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