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우파 정치인들과의 밀착을 과시하면서 유럽연합(EU) 회원국 간의 정치적 균열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트럼프가 유럽의 대미 무역흑자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에다 ‘그린란드의 미국 편입’을 주장하는 등 영토 확장 야욕까지 드러내는 상황에서 유럽의 공동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날 미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유럽의 주요 극우 정당 지도자들이 대거 초대를 받았다. 대부분 반(反)이민·반EU를 표방하는 극우 지도자들로,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알리스 바이델 독일대안당(AfD) 공동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의 극우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EU 지도자 중 유일하게 취임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반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중도 주류 지도자들은 대부분 초대 받지 못했다.
FT는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는 이 같은 구도가 유럽의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봤다. 실제 트럼프 시대에 대한 유럽 지도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이날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트럼프의 복귀가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 우파 부흥을 촉진할 것”이라며 “EU 점령 공세의 두 번째 단계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를 우려하면서 “유럽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며 무역 전쟁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행보에 대한 유럽의 공동 대응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은 대미 무역적자 해소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미국 편입 등 미국의 다양한 요구에 직면한 상태다.
이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1일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 연설에서 트럼프를 향해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협상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대미관계에 있어) 실용적일 것이나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고 가치를 지키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