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노노부양’
“이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지난 13일 서울 노원구의 한 노인전문병원. 진료실 앞에서 노모를 기다리던 박모(66)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씨는 노인이 노인 부모를 부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 부양’ 세대주다. 장녀인 그의 일상은 지난 8년간 80대 후반 노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모친의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병원 진료는 물론 식사와 산책 등 노모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박씨는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고충을 너무 잘 알기에 자녀로부터는 그 어떤 부양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 때야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라며 “우리가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도 지난해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노 부양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80세 이상 부모를 부양하는 가구는 2023년 말 13만1008가구로 2019년 9만4373가구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직장가입자 비중이 전체의 40%를 밑도는 데다 60세 이상은 은퇴 후 지역가입자에 속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노노 부양 가구는 30만 가구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80세가 넘은 노부모들은 잦은 병치레에 거동마저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요양 시설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비용이 은퇴한 6070세대에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요양 시설의 한 달 입소 비용은 식비와 약제비 등 비급여항목을 포함해 120만~150만원 수준. 이는 자신의 매달 생활비와 노후 자금에 추가되는 비용인 데다 노부모가 언제 퇴원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호소다.
서울 강동구에서 노부모와 함께 거주 중인 배모(67)씨도 고민 끝에 지난해 요양보호사로 취업했다. 노부모 부양비 부담이 갈수록 가중되자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거였다. 배씨는 “노부모 건강이 더 악화되면 개인 간병인이라도 붙여야 하는데 도무지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월평균 간병비는 약 370만원으로 65세 이상 노인 가구의 중위소득(224만원)을 한참 웃돈다. 은퇴 후 소득이 끊긴 대다수 노인 가구는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간병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노노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 6070세대의 또 다른 고민은 자신들의 노후 문제다. 80세가 넘은 노부모를 돌보고 있지만 정작 자녀들의 부양을 기대하긴 힘든 현실 탓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부모 부양의 책임은 자식에게 있다’는 데 동의한다는 응답이 2007년엔 52.6%에 달했지만 15년이 지난 2022년엔 21.4%까지 떨어졌다. 배씨도 “나도 예전 같으면 자녀들의 부양을 받을 나이지만 이젠 기대하긴 어렵게 된 게 현실 아니냐”며 “결국 우린 ‘샌드위치 세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노령층에 진입한 60대 사이에선 “자식에 기대지 않고 일찌감치 요양원에 들어가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현재 80대 이상 노인들이 요양 시설 입소를 ‘고려장’이라고 여길 정도로 큰 거부감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흐름이다. 김세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정책연구센터장은 “최근 65세 이상이 된 분들은 80대보다 자녀가 부양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낮다 보니 요양 시설에 들어가 여생을 보내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요양 시설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크게 줄어든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요양 시설도 비용 부담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고물가와 인건비 부담에 따른 운영난에 지난해에만 전국의 요양병원 1359곳이 문을 닫았다. 5년 전보다 218곳이나 줄어든 수치다.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족 중심 돌봄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사회적 돌봄 역량을 높여 나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도 노노 부양은 일찌감치 사회적 난제로 떠올랐다. 노부모를 부양하던 노인이 빈곤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다 ‘간병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간병 시설을 대폭 늘리고 자기 부담금을 줄이는 등 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개선해 나갔다.
전문가들은 초고령사회와 노노 부양의 충격이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더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일본은 물론 해외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는 점이 부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38.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4.2%보다 2.7배나 높을 정도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승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맞아 일정 소득 이하인 고령층에 기초연금 지원을 강화하는 등 노인복지 제도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