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굴레 (2)
탈북한 노숙자 최정철씨
10여 년 애환의 미국생활
"언젠가는 큰 집 짓고 싶어"
하지만 셸터 너머엔 두려움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최정철(59)씨가 휴대폰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워싱턴 불러바드와 그레머시 플레이스 인근의 한인 노숙자 전용 셸터에서 살고 있다. LA 지역의 땅 매물 리스트가 최씨의 작은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던 그가 한숨을 내쉰다. 최씨는 “도대체 LA의 땅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거냐”며 “꿈도 못 꾸겠다”고 하소연 했다.
LA인근의 땅 매물을 찾는 건 그의 일상이다. 최씨는 매일 ‘지상 낙원’을 찾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땅을 사서 그곳에 큰 집을 지을 것”이라며 “미국에도 탈북자가 많은데 모두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탈북자다. ‘지상 낙원’은 북한에서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고 주민을 세뇌시키기 위해 쓰이는 용어다. 최씨는 2000년 1월 진정한 지상 낙원을 찾아 탈출을 결심했다.
그는 벌목공이었다. 1995년 시베리아의 관문으로 불리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하바롭스크로 파견됐다. 북한 정부의 외화벌이 때문이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5년간 나무를 베며 살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다시 북한행 열차에 몸을 실어야 하는 암울한 현실뿐이었다.
하바롭스크의 극한 추위와 의미가 결여된 노동은 그를 한계점에 다다르게 했다. 결국 절박함만 남았다. 최씨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며 “그래서 기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고 했다.
탈북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최씨는 “누구를 도왔는데 그게 오해를 샀다"고만 했다. 기차에서 몸을 내던진 그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지상 낙원을 찾아 정착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감내하리라 마음먹었다.
최씨는 “감자밭에서도 일했고 미장공으로도 일해봤다. 러시아 곳곳을 떠돌며 돈을 모았다”며 “그런데 신분이 안되니까 품삯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신고를 빌미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다시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당시 폭행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아서다.
취재팀이 최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이었다. 그의 몸은 고난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추운 러시아에서도 길거리에서 살았다”며 “그때의 추위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런 LA의 따뜻한 날씨에도 내 발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진다”고 했다.
최씨가 미국으로 오게 된 건 지난 2011년의 일이다. 한 한인 목사가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최씨의 망명을 도왔다. 그가 미국에서 첫발을 내디딘 땅은 켄터키주였다. 이후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오하이오, 노스캐롤라이나 등 여러 주를 옮겨 다녔다.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삶은 북한과 러시아에서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었다. 문제는 몸이 더 이상 따라주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오랜 시간 육체 노동을 하며 살았던 최씨는 건강이 악화됐다. 일을 하고 싶어도 나약해진 몸 때문에 망치를 들 힘조차 없었다. 최씨는 그렇게 다시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그때 한 동료 탈북자가 따뜻한 날씨와 한인이 많은 LA로 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세인트 제임스 성공회 교회의 김요한 신부와 연이 닿게 됐다.
최씨는 아직도 셸터에서 악몽에 시달린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탈북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머무는 셸터를 “지상 낙원과 같은 곳”이라고 했다.
최씨는 “이곳에는 편안한 잠자리와 한국 음식이 있고, 한국어로 쉽게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자유를 최씨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누리고 싶어 한다. 그는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고 주식과 코인 등에 투자도 하고 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망가진 몸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가 휴대폰의 주식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며 자신의 투자 금액을 슬쩍 보여줬다. 얼핏 보니 땅을 사서 집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최씨는 그 적은 돈을 쥐고 늘 셸터 밖의 땅을 갈망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탈북까지 감행했던 최씨는 정작 지상 낙원을 찾기 위해 셸터를 벗어날 용기는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내가 영어 한마디도 못하고 건강도 안 좋은데 어디로 갈 수 있겠느냐”며 “이곳을 나가는 걸 상상하면 두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한인 셸터에 머물면 한인타운에서 한국어로 의료 상담도 받을 수 있고, 한식도 쉽게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는 다시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셨다.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최씨는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탈북자들을 꼭 도와주고 싶다”며 “그 땅이 내가 꿈꾸는 인생의 마지막 지상 낙원"이라고 했다.
그는 셸터에서의 안락한 삶과 자신이 꿈꾸는 지상 낙원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연한 현실인 노숙자의 굴레는 그 꿈을 옥죄고 있다.
[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12월 20일 게재된 기사를 한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장열·김영남·김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