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만인 방문객들에게 중국 거주자 카드나 현지 신분증 발급에 열을 올리면서 대만 당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 대만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최근 대만인 방문객들에게 거주자 카드와 은행 계좌, 현지 휴대전화 번호 등 이른바 ‘3종 문서’를 적극적으로 발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본래 시민권자에게만 발급되는 현지 신분증(ID카드)까지 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 정부는 중국이 3종 문서 발급을 통해 대만인들을 단계적으로 중국 시민권자로 포섭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대만의 한 고위 관리는 “더 많은 대만인이 중국 시민권을 갖게 되면 우리의 관할권이 훼손될 것”이라며 “중국 신분증을 가진 대만인이 여기(대만)서 사건에 연루됐을 때, 중국이 자국민임을 주장하며 국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과거 주변국을 상대로 이와 유사한 전술을 구사한 바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분쟁을 조장한 뒤 러시아로 이주한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여권을 발급했다. 또한 조지아의 분리 독립 지역 주민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한 뒤 2008년 전쟁의 구실로 이들 보호를 내세우기도 했다.
문제의 3종 문서 중 하나인 ‘대만인 용 거주자 카드’는 중국 시민권과는 다르다. 중국은 이를 대만인들이 현지 서비스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우대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만 당국은 이것이 시민권 취득의 통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지 신분증이 거주자 카드 대신 직접 제공되는 경우도 있고, 현지 신분증이 있으면 대출이나 주택 구매 시 더 나은 조건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도 적극적으로 홍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법에 따르면 중국 신분증을 받은 시민은 대만 호적이 말소된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 정부와 공식 소통을 거의 단절한 가운데 양안 간 여행과 무역, 투자가 수십년간 이어져 오면서 대만에서는 자국민의 중국 내 활동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1만7000명의 대만인이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이는 10년 전 최고치의 절반 수준이지만, 전년 대비 22% 증가한 수치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다면적 압박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 이 같은 시민권자 포섭 동향은 더욱 우려를 키운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 대만이 통일을 무기한 거부할 경우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도 경고에 나섰다. 라이 총통은 최근 대국민 신년사에서 중국 신분증이 제공하는 단기적 이익에 현혹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에는 ‘공짜가 가장 비싸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이 시점에 중국 신분증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