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할 결심, 시즌2

2025-11-09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2020년 12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판사 불법 사찰, 채널A 사건 관련 수사와 감찰 방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의 사유였다. 윤 전 대통령은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8일 만에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명예를 회복하고 직무에 복귀한 그는 석 달 뒤 전격 사퇴했다. 이어 대통령선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2021년 10월 서울행정법원은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했다. 이미 검찰을 나왔으니 징계의 실익은 없다. 그러나 정치 중립을 위반하고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대통령선거를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즉각 항소했고,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대선에서 승리했다.

법무부·검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상소 자제” 대통령 지시, 본인 수혜

윤석열 징계 법무부 패소와 닮은꼴

문제는 그다음이다. 법무부 수장에 임명된 한동훈 전 장관은 1심 승소를 이끈 정부 측 변호사들을 모두 해임했다. 새로 선임된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들은 증인 신청도 하지 않고, 변론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승소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항소심에서 정부가 졌고, 법무부는 상고도 포기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이미 당선된 윤 전 대통령의 과거 징계 기록을 지우는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패러디해, 한 전 장관이 ‘패소할 결심’을 한 결과라고 몰아세웠다. 징계를 주도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두 눈 뜨고 있는 국민을 직면해서 (재판)쇼가 안 통한다는 것을 실감하셔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랬던 민주당의 입장이 싹 바뀌었다. 지난 주말 대장동 사건 피고인 5인방에 대한 항소를 검찰이 끝내 포기한 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항소 포기가 아니라 ‘항소 자제’라고 우긴다. 김만배·유동규 등이 구형량보다 높은 징역형이 나오는 등 ‘구형량의 3분의 1 이하일 때 항소’한다는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의 업무상 배임을 적용했다. 주범이 특경가법상 배임죄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으니 검찰로선 공범에게 이 죄목으로 유죄를 다투기도 곤란한 입장이 됐다. 여당이 배임죄를 없애면 처벌 자체가 불가능해진다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날 논란을 사전에 차단한 셈이다. 이래저래 같은 사건으로 기소됐지만 재판이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이 ‘항소 포기’의 수혜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 결과적으로 대장동 일당의 배임액 4895억원 중 일반 뇌물죄로 추징이 선고된 47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회수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특정인을 탈탈 털어 기소하고, 무죄가 나와도 기계적으로 항소하는 관행은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수많은 인권 관련 사건에서 과거사위원회의 권고와 법원의 재심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항소와 상고가 이어졌다. 끝내 무죄가 확정돼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검사도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말 국무회의에서 이를 두고 “국민에게 잔인한 관행”이라며 시정을 지시했다. 법무부는 개선 의사를 밝혔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대검 예규를 바꿔 기계적 항소를 자제토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 달쯤 후인 지난 4일, 대검은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렸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백모씨 부녀에 대한 상고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 검사와 재심 공판 검사들이 상고 의지를 밝혔는데도 이를 만류한 것이다. 검찰의 관행이 실제로 바뀌는 듯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두 번째 수혜자가 되고 나니 선의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막걸리 살인사건의 항소 포기는 대장동이라는 ‘메인 이벤트’를 위해 밑자락을 깐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든다. 권력자의 징계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난 정권의 법무부가 ‘패소할 결심’을 했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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