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통해 탄소 중립 실현"···벤츠의 재활용 공장

2024-10-21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110㎞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쿠펜하임에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세워졌다. 한적한 시골에 세워진 이 공장은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의 순환 고리를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1일(현지시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부르크주 쿠펜하임에 전기차 폐배터리 자원 재활용 공장의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장의 가동 개시를 알렸다.

공장 소재지인 쿠펜하임은 독일의 남서쪽 끝 도시이다. 이 공장에서 서쪽으로 20㎞만 더 지나가면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이 있다. 이 마을의 거주 인구는 약 8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쿠펜하임이라는 지명은 다소 낯설지만 쿠펜하임과 맞닿은 바덴바덴은 한국인들에게 나름대로 인지도가 높은 도시다. 이곳은 지난 198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 올림픽의 유치 소식을 타전한 도시다. 바덴바덴 도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쿠펜하임이 있다.

조용한 독일의 끄트머리 도시에 축구장 0.7개 수준(6800㎡)의 유럽 첫 습식 제련 방식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세워지면서 한적했던 도시가 북적였다.

이날 오전에 열린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개소식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테클라 발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환경부 장관,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 이사회 회장 등 독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메르세데스-벤츠 고위 경영진 등이 총출동했다.

특히 독일 정부의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약 700㎞의 거리를 달려서 쿠펜하임까지 직접 나온 것은 그만큼 전기차 폐배터리 사업의 중요성을 독일 정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쿠펜하임은 과거부터 인연이 있던 곳이다. 원래 쿠펜하임에는 메르세데스-벤츠 차의 뼈대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 내 공장 재배치와 역할 재구성 과정에서 쿠펜하임 차체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고 마침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이곳이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부지로 낙점됐다.

공장 설립 비용은 벤츠 경영진이 내부 사유를 들어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로는 최초로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최초의 자체 시설 구축 사례이기에 보안 유지 차원에서 투자 규모를 밝히지 않은 듯하다.

벤츠 측 관계자는 "1000만~9000만유로 사이의 금액을 이 공장 설립에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을 아꼈는데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최소 150억원에서 최대 1400억원 안팎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수백억원의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투자 사례로 볼 수 있다.

수명을 다한 전기차 폐배터리의 주요 원자재들이 분쇄·분리돼 새로운 배터리 셀의 소재로 재활용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곳곳에서 수집된 전기차 폐배터리가 이 공장으로 이송되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분쇄기로 옮겨진다. 분쇄기로 들어간 전기차 폐배터리는 포장된 채로 으깨진 뒤 마찰 세척 과정을 거쳐 성분 분해 과정을 통해 플라스틱, 구리, 알루미늄으로 각각 분리된다.

이어 전자기력을 통해 철가루까지 별도 분리하고 진공 건조기까지 거치고 나면 폐배터리 재활용의 핵심 물질인 '블랙 매스'가 나온다. 부서진 폐배터리에서 나오는 검은색 가루인 블랙 매스는 삼원계 배터리의 핵심 물질인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희소금속 소재가 함유돼있다.

분리된 블랙 매스는 황산 용액과 더해져 침출액이 된다. 이후 결정화 과정을 거쳐 황산니켈, 황산구리, 황산코발트 등으로 분리된 뒤 각 물질별 봉투로 분리돼 모아진다.

분리된 물질은 양극재·음극재 생산업체로 보내져 새로운 배터리 셀이 될 수 있는 재료로 재탄생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양극재·음극재 업체로부터 소재를 다시 공급 받아 슈투트가르트 근교 도시 헤델핑겐에 있는 배터리 생산 공장에서 새로운 배터리 셀을 만들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분리된 소재들을 합치면 약 5만개의 전기차 배터리 모듈을 생산할 수 있는 소재 분량이 만들어진다.

현재는 공장 운영 초기 단계이기에 전기차 배터리 시제품을 연구·생산하고 있는 슈투트가르트 운터튀르크하임의 메르세데스-벤츠 e 캠퍼스에서 만들어진 배터리를 소재 분리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새롭게 문을 연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소재 분리 과정에서 열을 통해 말려서 새로운 물질을 얻어내는 건식 제련이 아니라 황산 용액을 부어서 물질을 추출하는 습식 제련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습식 제련 방식은 건식 제련 방식보다 열에너지를 덜 쓰기 때문에 탄소 발자국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공정 과정에서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 역시 습식 제련이 건식 제련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측은 기계식 습식 제련을 통해 96% 수준의 소재 회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못 쓰는 배터리에서 추출한 소재지만 이를 모아서 다시 양극재와 음극재로 만든 뒤 배터리 생산 과정에 조합하면 새 전기차 배터리와 진배없기에 큰 문제는 없다.

소재 분리 공정에서 사람의 손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 공장의 실제 근무자 수는 50명에 불과한데 각지에서 수급된 폐배터리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이들과 전반적 공정 관리 업무, 분리된 물질의 상태 평가 업무 등이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맡는 임무의 전부다.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은 배터리 구성 핵심 광물인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희귀 금속 채취를 위해 아프리카의 극빈국에서 노동 착취 사건까지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ESG 경영 실천 차원에서도 중요한 사업이다.

무엇보다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이들 광물만 쉽게 수급해도 전기차 배터리 가격도 낮출 수 있고 이른바 '순환 경제'의 고리를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발현된다.

특히 배터리 업체가 아닌 완성차 생산 업체가 폐배터리의 수급부터 소재 분리를 거쳐 새로운 배터리 셀의 조합까지 한꺼번에 맡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롭 할로웨이 메르세데스-벤츠 승용·밴 부문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메르세데스-벤츠는 쿠펜하임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가치 사슬의 순환 체계를 확립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브랜드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친환경 공정으로 이뤄지는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벤츠가 세운 탄소 중립 실현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서고 더 나은 미래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하며 "벤츠는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전기차 시대의 미래를 위해 이 공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현재 가동 수준에서 시범 운영 형태로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성과를 평가한 뒤 쿠펜하임 공장의 증축이나 독일 내 타 지역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추가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세부 성과의 도출은 빠르면 내년 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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