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는 한국어 외에 외국어로 영어, 프랑스어, 튀르키예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고 프랑스어도 유엔 공용어 지위를 누린다. 그런데 튀르키예어 페이지를 따로 둔 점은 다소 의외다. 기념공원에 안장된 유엔군 참전용사 수를 헤아려보면 궁금증은 곧 풀린다. 6·25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 전체 전사자 1000여명 가운데 460여명이 고국 대신 부산에 묻혀 있다. 부산에서 영면에 든 영국군 전사자 890여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기념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이들이 대부분 6·25 참전용사 후손이란 점을 감안하면 튀르키예어 서비스 제공은 당연한 조치라고 하겠다.

지난 8월 21일 서울 동작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서 튀르키예군 추정 유해 4위 인수식이 엄수됐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것이 확실시되는 튀르키예군 장병 4명의 유해를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국유단에 인계한 것이다. 이들도 본국으로 봉환되는 대신 한국 부산에 묻힐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국유단 관계자는 “전사자를 대우하는 튀르키예의 정서는 한국, 미국 등과는 다르다”며 “타국일지라도 전사한 곳에 묻히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6·25 전란 때 튀르키예는 미국(178만여명), 영국(5만6000여명), 캐나다(2만6000여명) 다음으로 많은 연인원 2만1000여명의 병력을 한반도에 보내 한국을 도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유럽의 강대국인 프랑스(3400여명)보다 훨씬 많다. 6·25 기간 튀르키예의 군대만 한국에 힘이 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용산 전쟁기념관 3층 튀르키예 전시실에는 튀르키예어로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힌 튀르키예 국기가 전시돼 있다. 당시 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 고교 학생들이 자국 장병을 응원한다며 손가락에서 흘린 피로 글씨를 쓰고 저마다 손도장도 찍었다고 한다. 참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튀르키예를 국빈 방문했다. 한국 국가원수가 튀르키예에 간 것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국가보훈부와 튀르키예 가족사회부 간에 ‘6·25 전쟁 기념 상호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앞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튀르키예를 여러 차례 ‘혈맹’으로 규정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한국 국민이 튀르키예인들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며 기억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튀르키예에서 한국인들은 ‘칸 카르데쉬’(Kan Kardes: 피로 맺은 형제)로 통한다니, 그저 가슴이 뭉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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