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직장인 이모(27·남)씨는 지난달 홍삼 성분이 들어간 건강기능식품을 샀다. 이씨는 ‘당뇨병이 우려된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접한 뒤 새삼 혈당 관리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 홍삼이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상품 설명에 지갑을 열었다. 올해 2월 결혼식을 앞두고 다이어트 중인 직장인 박모(33·여)씨도 저당·저칼로리로 식단 도시락 구독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살을 빼면서 혈당 관리까지 함께 된다는 메뉴 설명이 서비스 가입에 계기가 됐다.
최근 젊은 층의 건강 관리 화두는 ‘혈당’이다. 근력 강화나 체중 조절을 넘어서는 근본적 해법이라는 것이 과거와 다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혈당관리’ 관련 게시물 수는 8만4000여개, ‘#혈당조절’은 2만2000여개에 달한다.
이처럼 2030이 혈당에 꽂힌 배경에는 천천히 나이 들기 원하는 ‘저속 노화’가 있다. 저속 노화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제시한 용어로, 식단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관리법을 뜻한다. 초고령 사회의 100세 시대가 보편화 하면서 젊을 때부터 필요한 건강관리법으로 혈당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홍삼이 혈당 조절” 연구로 반전
2030의 혈당 관리로 새삼 주목받는 식품이 홍삼이다. 과거에는 고령층이 찾는 중약(중국 한약제) 이미지가 강한 탓에 선호가 덜 했다가, 최근 한 연구진의 발표가 시장의 전환점이 됐다. 박상준 경북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홍삼이 혈당을 조절하는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변이 당뇨병 마우스(쥐) 모델을 활용해 9주 동안 홍삼(KGC05pg)을 투여, 대조군보다 홍삼처리 군에서 공복혈당 및 식후혈당 수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최근 3개월간 혈당 조절이 잘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인 당화혈색소와 인슐린 저항성 등도 감소했다.
이를 바탕으로 출시된 건강 기능식품은 2030을 타깃 삼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KGC인삼공사가 선보인 ‘지엘프로더블컷’의 경우, 이 제품의 20대 구매율은 자사 대표 제품인 정관장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전체 매출도 견인해, 관련 제품 2종은 출시 한 달 만에 매출 22억원을 달성했다.
경쟁이 치열한 가정간편식(HMR)에서 혈당 관리 레시피를 내세운 상품으로 성장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메뉴 다수가 당 함유량이 높은 설탕 대신 올리고당·알룰로스를 활용하고, 저당 식재료를 사용한 것을 차별점으로 둔다. 현대그린푸드의 ‘그리팅(GREATING)’ 제품은 저당식단 매출에서 2030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23년 30%에서 지난해 (1월~11월 기준) 42%로 늘었다.
‘혈당 관리’ 트렌드 뒤엔 ‘저속노화’
‘저속노화(슬로우 에이징)’는 이제 2030 식문화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현미·렌틸콩·귀리 등 잡곡밥과 신선한 채소, 단백질 등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는 식사법과 레시피 등이 유튜브로 퍼지면서,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빠르게 확산되면서다. 실제 1인 가구와 2030이 주 사용자인 '배달의 민족'의 ‘배민 외식업 콘퍼런스’에서는 2025년 외식업 트렌드로 저속노화를 꼽고, 저염·저열량·디카페인 등 메뉴 주문량이 일반 음식보다 1.3~2배 넘게 많아졌다고 밝힌 바 있다.
젊은 층의 혈당 관리에 대해 업계는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 등의 영향으로 만성 질환자(고혈압·당뇨·비만)가 증가했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는다. 특히 ‘젊은 당뇨’를 앓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중장년층에서나 주목받던 식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실제 최근 5년 간(2019~2023) 당뇨병 진료 현황에 따르면, 20대 진료 환자는 5년간 33.1% 급증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또 국내 전체 청년층 5명 중 1명인 약 300만명(21.8%)이 당뇨병 전 단계를 앓고 있다.
질환이 없더라도 젊은 층 사이 건강관리에 파고드는 헬스디깅(health+digging)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관심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혈당 관리를 통한 체중 감량 방법까지 주목받으면서 일상생활에서 건강한 식단관리를 철저히 하는 2030이 더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