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겐 생업의 현장, 누군가에겐 취미를 펼치는 공간….
이달 말 고객 인도를 앞둔 기아의 첫 전기 목적기반차(Purpose Built Vehicle·PBV), PV5를 지난 19일 시승했다. 카고(화물)·패신저(승합) 모델을 번갈아 몰며 경기도 고양시에서 인천 영종도까지 왕복 약 80㎞를 달렸다. 약 1시간 20분간 체험을 마친 뒤 '달릴 때보다 서 있을 때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한 차'란 생각이 들었다.

PBV는 기본적으로 상용차다. 기아는 B2B 공략에 나섰다. 카고 모델은 바닥 높이를 419㎜로 낮춰 상·하차 편의성을 높였다. DHL코리아, 의약품 유통기업 지오영, 방역업체 세스코, 공구 기업 밀워키 등이 PV5와 손잡았다. 패신저 모델은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 활용을 논의 중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일반 택배차로 쓰기엔 작다는 의견도 있지만, 도심에서 잦은 상·하차에는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개인 사용자를 겨냥한 공간 구상도 흥미롭다. 기아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일반 소비자가 꿈꿔볼 만한 커스터마이징(맞춤) 아이디어를 시승 행사장 곳곳에 선보였다. PV5 카고 내부를 PC방처럼 꾸민 전시차도 있었다. 실제 기아가 e스포츠·게임 콘텐트 촬영에 활용 중이다. 대형 모니터와 게이밍 의자를 설치한 모습은 영화관이나 노래방으로도 변신이 가능해 보였다.
사무용 책상과 선반을 배치한 이동형 오피스, 패신저 모델의 시트를 접어 캠핑·차박(차에서 숙박)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소개됐다. 기아는 자체 온라인몰 ‘기아샵’을 통해 이런 맞춤형 상품을 판매한다. 단순 액세서리 판매를 넘어 차를 사무실이나 서재로 만드는 리모델링 시장까지 새 먹거리로 노렸다.

기아는 PV5 모델을 순차적으로 추가해 패신저 4종과 카고 3종을 선보일 예정이다. 4분기에는 화성 PBV 전용 공장 인근에 ‘컨버전 센터’도 연다. 고객들의 요구사항에 맞는 다양한 컨버전 모델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차량 가격은 패신저 4782만 원, 카고 4200만 원부터 시작한다. 전기차 보조금을 적용하면 서울 기준 카고 모델은 2700만 원대, 패신저 모델은 420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공간으로 꾸미려면 추가 비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책상 겸용 ‘워크스페이스’는 176만 원, 설치에 필수인 바닥 공사와 자재를 포함하면 275만원이 든다. 2단 선반은 99만 원, 3단 선반은 88만 원 수준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격이 과하다”는 반응과 “해외 리모델링 사례와 비교하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기아가 PV5를 출시한 배경에는 미개척 시장이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 경상용차 판매는 2만1000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52% 줄었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66만 대가 팔리며 40% 이상 성장했다. KAMA는 “현재까지 국산 전기 승합차는 없고, 일부 중국산을 제외하면 사실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즉, ‘괜찮은 국산 전기 상용차’는 아직 블루오션이란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