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새울 원자력발전소는 최근까지 주 출입구를 2개 운영했다. 공정률 96.1%를 기록하고 있는 새울 3·4호기에 작업 차 하루에도 수백 명의 근로자가 오가고 자재 트럭이 드나드는 탓이다. 번잡한 공사 현장이지만 최고 등급의 보안 시설에 어울리게 모든 출입자가 두 차례에 걸친 신원 확인 작업을 거친 뒤에야 현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새울 3·4호기 옆으로는 한국형 차세대 가압경수로 APR1400 모델이 처음으로 적용된 새울 1·2호기가 쉴 새 없이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가동된 지 8년이 넘은 탓에 새울 1·2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수조에는 이미 300여 다발의 사용후핵연료 봉이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APR1400의 가장 큰 특징은 40년이던 설계수명을 60년으로 늘렸다는 점”이라며 “30~40년의 계속운전을 고려하면 100년 가까이 쓸 수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새울 1호기는 2016년 12월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니 2075년이 되면 설계수명이 다한다. 하지만 두세 차례 계속운전 허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2100년까지 거뜬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한수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새울 1호기를 모델로 지어진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 4기는 물론 새울 1호기 이후 한국에 지어진 ARP1400 원전 5기 모두 사실상 22세기까지 ‘현역 장비’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원자력 업계 관계자들은 새울 1호기 공사의 첫 삽을 뜬 지 18년이 지나면서 한국의 원자력 기술 수준도 상당히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압경수로의 3대 핵심 장비로 불리는 △냉각재 펌프 △증기발생기 △제어계측장치(MMIS)를 모두 국산화한 것이 성과로 꼽힌다. 3대 장비에 더해 증기터빈과 가압기 등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어느 나라든 원전을 만들려면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자신감이 나온다. 한수원 관계자는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 부족과 현지 사정 등으로 주요 설비를 미국·일본 회사로부터 수입해야 했다”며 “이제는 한국 제품의 수준이 높아져 오히려 원전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선진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 제품을 주문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증기발생기와 터빈, 가압기, 냉각재 펌프 등 핵심 설비 제조 기술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집트·중국·캐나다 등에서 원전 기자재를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최대 소형모듈형원전(SMR) 업체인 뉴스케일파워에도 증기발생기와 원자로를 납품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SMR 시장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이 설계 기술 등 원천 기술에서 앞서지만 제조 역량은 우리가 한 수 위”라며 “대형 원전과 SMR 모두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