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는 없었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결국 증세를 발표했다. 2029~30년 회계연도까지 연간 260억 파운드(약 50조5000억원) 규모의 세수 확대와 함께 각종 복지 지원책을 함께 발표하면서다.

BBC 등에 따르면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이 같은 내용의 키어 스타머 정부 두 번째 예산안을 발표했다. 리브스 장관은 “공정한 세금, 강한 공공서비스, 안정적인 경제를 위한 예산”이라며 “무모한 차입도, 보수당 시절로의 긴축 회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예산안은 노동당의 선거 공약을 뒤집는 행보다. 지난해 7월 총선 때 노동당은 “소득세·부가가치세·국가보험 세율은 올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가을 리브스 장관이 처음 내놓은 예산안에선 재정 현실론과 타협해 질병·장애 급여 등 복지를 축소했다. 반발은 노동당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기존 수급자에 대한 지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향후 신규 신청자에게 지원 축소 요건을 적용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복지 재원의 구멍을 증세로 메워야 할 필요성이 이때부터 제기되면서 스타머 정부는 증세 카드를 선택했다. 우선 소득세와 국가보험 공제 구간 동결을 3년 연장해 2030~31년까지 묶어두기로 했다. 임금과 물가는 오르는데 기준선은 변하지 않아 더 많은 근로자가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밀려 올라가는 효과를 노렸다.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2029년부터 420만 명을 새 소득세 납세자로 편입시키고, 이 가운데 300만 명은 40% 고세율 구간, 60만 명은 45% 추가세율 구간으로 올라갈 것으로 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세금을 늘리는 조용한 세율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저택세 등 신설 세금도 도입하고, 배당 및 저축 등에 대한 세율도 인상했다. OBR은 2030~31 회계연도 조세부담률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8%를 넘어 전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노동당 정부는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복지를 확대하기로 했다. 전기요금에 얹혀있던 친환경 부담금을 일반 재원에서 부담하도록 바꿔 가구당 전기요금을 연 150파운드(약 30만원) 절감하겠다고 영국 정부는 설명했다. 일부 철도요금과 처방료 동결, 최저임금 인상, 문화·창작 노동자 지원 등 생계비 관련 조치도 빠지지 않았다. 2017년 4월 이후 태어난 셋째 아이에 대한 세금·복지 지원도 담았다.
영국 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인디펜던트는 독자 반응을 인용해 “책임 있게 저축하고 노후를 준비해 온 사람들은 한 방 얻어맞는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텔레그래프도 “중산층 가정을 정조준한 ‘세금 뷔페’”라고 평가절하했다.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는 하원 연설에서 “노동당은 이제 ‘복지당(Welfare Party)’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녹색당은 “극단적 부에 공정하게 과세하는 대신 갈라진 틈을 임시로 가리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증세에 따른 이민 후폭풍을 놓고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텔레그래프는 24일 ‘노동당의 세금이 사람들을 영국 밖으로 내몰고 있다’ 기사에서 “피터 카일 영국 산업통상부 장관이 부자들의 이탈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투자이민 컨설팅 업체 헨리앤파트너스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올해 영국을 떠나는 백만장자가 1만6500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순유출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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