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흥겨운 캐럴,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 알알이 예쁜 전구…. 연말의 거리는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재잘대며 거리를 채우죠. 하지만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일까요.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되기 쉬운 것 또한 연말입니다. 이번 주 오마주는 ‘올해도 다 갔구나. 한 해 동안 난 뭘 했나,’ 괜히 침잠하는 마음이 들 때 볼 만한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기차의 꿈>(클린트 벤틀리 감독)입니다.
<기차의 꿈>은 20세기 초 미국 북서부 아이다호주, 높다란 나무를 베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조엘 에저튼)의 80년 생애를 그립니다.
그레이니어는 특징이 적은 남자입니다. 말수가 적고 성격은 덤덤합니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대, 그와 동료들이 자른 나무는 대륙 횡단철도가 다닐 수 있는 다리가 됩니다. 숲이 울창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평생 바다를 본 적 없는 그에게 나무가 무엇이 되는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일당을 벌기 위해 일할 뿐이죠.

그레이니어가 ‘그레이니어’로서 존재하는 건 벌목 시즌이 끝난 뒤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글래디스(펄리시티 존스)와 갓 태어난 딸이 있는 오두막집이 그의 쉴 곳입니다. 그레이니어는 집에서도 수다쟁이는 아니지만,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기쁨으로 반짝입니다. 평범하지만 충만한 일상입니다. 긴 벌목 시즌이 끝나고 돌아오면 아이가 부쩍 커 있는 게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딸의 일생을 놓치는 기분”이 들어서요. 하지만 이 행복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마을을 집어삼킨 산불이 그의 삶을 뒤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기차의 꿈>은 느린 호흡으로 그레이니어의 평범한 삶을 관조하듯 보여줍니다. 한 번의 커다란 불행 이외에 극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그 불행조차도,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모든 걸 잃고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그레이니어의 삶을 비극적으로 연출하지 않습니다. 대신 슬퍼하며 길을 잃고, 습관적으로 일터에 나가고, 그러다가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모습을 천천히 따라갑니다. 이는 평단의 호평을 받은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의 동명 원작 소설이 지닌 미덕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자연입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나무와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 울창한 숲은 영화 사이사이 공백을 메웁니다. 1920년대 사진들에서 영감을 받아 3:2 비율로 촬영된 영화에는 유독 헤드룸(인물 머리 위 공간)이 많은 샷이 많습니다. 아돌포 벨로소 촬영감독은 외신 인터뷰에서 “자연을 하나의 주인공처럼 보여주고 싶었기에 헤드룸을 많이 남겼다”며 “나무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하늘도 한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그레이니어를 더욱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으로 보이게 합니다. 무수한 나무가 그레이니어와 벌목꾼의 손에 잘려 나갔는데도 울창함을 잃지 않는 숲처럼, 그레이니어 한 사람에게 닥친 불행에도 세상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나아갑니다.
운명처럼 찾아오는 소중한 인연이 있는가 하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행도 있다는 것. 그 모든 게 인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새삼 위대한 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2025년의 마지막 주말, 마음이 차분히 정돈되는 이 영화로 한 해를 마무리하시면 어떨까요.
평온함 지수 ★★★★★: 삽입된 서정적인 BGM과 자연의 소리만으로 명상 효과가 있다
눈빛 지수 ★★★★: 말이 아닌 눈빛으로, 조엘 에저튼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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