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내가 갈게” 노래했다…‘홍천 무릉도원’ 시인의 마중길

2024-09-23

강원 홍천의 숲엔 두 명의 자연인이 산다. 가곡 마중의 노랫말이 된 ‘마중’ 시인 허림(64)과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감독 최기순(61)이다. 허 시인은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구룡령(1013m)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살고, 최 감독은 홍천 구성포리에 자신의 살림집 겸 펜션을 짓고 산다. 집 이름이 ‘나는 숲이다’이다.

지난 12일, 두 자연인과 함께 홍천읍에서 멀지 않은 상오안리 며느리고개에 섰다. 1968년 개통된 전국 최초의 임도(林道) ‘68도사곡’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석장재(해발 약 500m) 너머 도사곡 마을까지 약 6㎞의 길. 시인의 말에 따르면 “내촌면 군유동, 내면 살둔과 함께 홍천의 무릉도원”이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 이날, 68도사곡 길은 아늑하고 운치 있었다. 도사곡 사람들은 이 길을 홍천의 ‘마중길’로 이름을 짓는 절차를 밟고 있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 마중(1988)

시인은 며느리고개로 가는 차 안에서 가곡 마중을 들려줬다. 최 감독은 “이 형은 노래도 잘하고 하모니카도 잘 불고 못하는 게 없다”고 했다. 작사자가 직접 부르는 마중은 달달했다. 그의 목소리가 사근사근한 데다 음정도 정확해서다. 마중은 최근 중장년층이 가장 많이 따라 부르는 가곡이 됐다고 한다. 성악계에서도 인기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지난해 한국 가곡 탄생 100년을 기념한 앨범 ‘사랑할 때(in LOVE)’에서 마중을 타이틀 곡으로 썼다.

68도사곡 앞 이정표엔 ‘이곳에서 임도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쓰여 있다. 전국 최초의 임도는 산림자원 보전을 이유로 개통됐다. 이후 1994년 석장재에서 하오안리로 가는 ‘94하오안’ 길이 생겨 약 13㎞에 이른다. 걷기 좋은 호젓한 길이지만, 평소 드나드는 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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