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명의 고전 성독] 주문하면 책을 찍어내는

2024-07-05

어떤 스타트업 출판사가 있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 내놓은 인상적인 문구에 대단한 뜻이 드러난다. “백 명의 뛰어난 작가가 만 권의 책을 팔기보다는 만 명의 보통 작가가 백 권을 파는 그날을 꿈꾼다.” 판매한 수는 백만 권으로 같으나 작가는 백 배 더 늘어난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작가가 될 날이 머지않아 오리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조선 중후기에 사대부들만 하던 문학 활동을 중인도 본격적으로 했다. 골목문학, 거리문학, 마을문학이라 해석할 수 있는 ‘여항(閭巷)문학’을 중인 신분 문인들이 주도해 시모임을 만들고 공동시집을 발간했다. 한문 글쓰기가 늘어나고 문집 발간도 팽창했을 것이다. 한문으로 하는 형이상학 공부에 수많은 사람이 뛰어든 것이다.

전문가만 내던 책을 누구나 내는 것은, 새로운 출판 시스템 덕분이다. 묵히고 있던 아이디어가 활성화되고, 쉬고 있던 창조 주권이 뜨겁게 발현될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찍고, 왕조실록을 내고, 선비들의 울울창창한 문집이 오늘날 초등학생들의 학급문집으로 이어지는 오랜 글쓰기 전통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리라!

마침 최한기 선생이 ‘독서와 저술’이라는 짧을 글을 써서, 읽기와 쓰기가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니라 이렇다고 넌지시 알려 주신다.

讀書著述(독서저술)이라 : 독서와 저술

溫習古書(온습고서)는 : 고전을 탐구하고 익히는 것은

以切磋我心爲極功(이절차아심위극공)이라 : 오직 내 마음을 닦기 위해 하는 것이다.

記述諸篇(기술제편)은 : 여러 가지 책을 저술하는 것은

以康濟民事爲第一(이강제민사위제일)이라 : 민생을 구제하여 편히 살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적이다.

人之所以貴多聞博識者(인지소이귀다문박식자)는 : 사람이 많이 듣고 널리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爲其切磋勸懲不尠也(위기절차권징불선야)요 :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닦아서 권선징악을 하기 위해서요 (尠적을선,드물선)

非爲其但能多識前言往行也(비위기단능다식전언왕행야)라 : 단지 옛사람들의 말이나 지나간 행적을 많이 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若夫論舒事之順逆(약부논서사지순역)이거나 : 역사상 펼쳐진 일의 순리와 역행을 논평하거나

評體格之淳樸(평체격지순박)은 : 문체와 격식의 순박함을 평가하는 일은

已落第二義也(이낙제이의야)라 : 이미 중요치 않은 둘째 일로 떨어졌다.

記述之要(기술지요)는 : 책을 쓰는 요체는

在於民事之康濟(재어민사지강제)니라 : 민생을 편안하게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言理氣(언이기)하면 : 이기철학을 이야기하면

則要使人有所開發(즉요사인유소개발)이요 : 사람들의 사고력 개발이 중요하고

言道德(언도덕) : 삶의 원리(道)와 사랑의 실천(德)을 말하면

則要使人想儀薰染(즉요사인상의훈염)이라 : 사람들이 규범을 생각하고 도리를 알게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추측록 제6권>, 추물측사(推物測事), 독서와 저술, 최한기)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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