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간절히 봄을 기다리다

2025-03-20

지난 주말 추적추적 봄비가 내렸습니다. 날도 꽤 쌀쌀합니다. 울산에도 산이 높고 깊은 곳엔 눈이 내렸을 것입니다. 때아닌 눈으로 겨울왕국이 된 곳도 있다고 합니다. 겨울의 마지막을 즐겨야 할까요? 아니면 늦어지는 봄을 재촉해야 할까요?

대통령 탄핵 선고가 마치 늦어지는 봄과 같습니다. 기필코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늦어지는 봄에 애가 타듯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 한구석엔 알 수 없는 불안이 자리 잡습니다.

3월 15일, 토요일 오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시간표를 봅니다. 노선이 바뀐 탓에 타야 할 버스 번호를 확인해야 했지요. 삼산동 롯데백화점 앞을 지나는 버스는 40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날씨도 춥고, 늦을 것 같습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로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 탔습니다. 택시 기사는 집회가 있어 차가 막힐 것이라며 돌아가도 되냐고 묻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나의 외출 목적을 눈치챈 듯합니다. 그래서 먼저 탄핵정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어서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군요. 그러면서 오전에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하려고 서울로 가는 승객을 태웠다고 합니다. 야당의 유력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공산화가 될 것이고, 자신이 가진 땅을 빼앗길 것이라며 진심을 다해 얘기하더랍니다. 그 진심이 무섭습니다.

롯데백화점 앞은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습니다. 근처에 내려 탄핵 촉구 집회장에 들어섭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집회 주최 측에서 내미는 비옷을 받아 입었습니다. 여러 단체의 깃발이 펄럭이고, 알만한 얼굴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된 반가운 이들도 있습니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중 집회에 간 이들이 많아서, 울산 집회 참가자가 다른 날보다 적다지만 꽤 많은 이들이 모였습니다. 자유발언과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을 이어가는데 도로 건너편에서 익숙하지 않은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보니 태극기와 성조기가 날립니다. 태화강역 앞에서 있었다는 탄핵 반대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는 모양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한 시간 남짓한 집회가 끝이 났습니다. 롯데백화점에서 현대해상 건물이 있는 사거리까지 행진해 돌아오는 것으로 행사를 마치겠답니다. 중간중간에 배치된 사회자의 선창을 따라 구호도 외치고, 울려 퍼지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행진행렬 때문에 차들은 가다 멈추다를 반복합니다. 대부분의 차량은 기다려줍니다. 간혹 경적을 울리는 차량도 있습니다. 뜻을 같이한다는 신호인지, 반대 의사인지, 그도 아니면 바쁜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길을 가던 행인 중에는 탄핵을 외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 집회를 마칩니다. 사회자는 매일 집회가 이어진다고 알립니다. 여전히 하늘은 흐리지만, 비는 그쳤습니다. 여기저기 참여단체의 일행들이 깃발을 옆에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밝은 얼굴들입니다. 나누어 받았던 종이 피켓과 작은 손 깃발을 되돌려줍니다. 재활용하라는 비옷을 구겨서 말아 가방에 넣고,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집회장을 벗어납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섰습니다. 집 근처로 가는 낯선 번호의 버스를 탔습니다. 다행히 빈 좌석이 있습니다. 집회 준비 비용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회자의 얘기가 떠올라 찍어온 계좌로 많지 않은 금액을 이체합니다. 그나마 마음속 불안을 해소하는 작은 실천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합니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원영미 울산대학교 강사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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