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7일 휴스턴 오픈 1라운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이경훈(34)이 첫 4개 홀에서 버디 2개를 잡아 리더보드 맨 위로 올라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는 나머지 홀에서 보기 5, 더블보기 2개에 버디 2개로 7타를 잃었다.
다음 날 아침 기권했다는 발표에 다들 놀랐다. 이경훈은 PGA 투어에서 기권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경훈의 모토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이다.
그런 그는 조용히 PGA 투어에 병가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재활하고 있다.
18일 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이경훈과 줌으로 화상 인터뷰를 했다. 표정이 3월과는 확 달라졌다. 얼굴도 날렵해졌고 표정도 밝았다.
-기권을 거의 안 하지 않았나.
“맞다. 운동선수는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고 배웠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디가 부러진 게 아니면 계속 경기했다. 지금까지 기권이 두 번 정도였다.”
-얼마 만에 한국에 갔나.
“3년 만이다. 이전까지는 매년 겨울 갔는데, PGA 투어 제도가 바뀐 이후 비시즌이 한 달도 안 된다. 또한 등수를 하나라도 높여야 나갈 수 있는 큰 대회가 많아진다. 시간을 아껴 집중하고 준비하려고 했다.”
-한국 가니 뭐가 제일 좋나.
“먹거리가 달라지고 부모님도 보고 친구도 봐서 좋다. 두 딸(유나, 리나)이 이제 말도 잘한다. 딸들 크는 모습 볼 시간이 많아서 좋다. 그동안 내가 왜 한국에 안 왔을까, 후회될 정도다.”

-선수 생활하면서 쉬어본 적이 있나.
“비시즌엔 처음이다. 일본 투어 뛸 때는 시즌 후 시간이 좀 있긴 했는데 미국에 와서는 비시즌도 별로 쉴 틈이 없다. 이렇게 오래 쉰 것도 당연히 처음이다.”
-좀 쉬지 그랬나.
“투어에서 경기하다 보면 경기에 매몰된다. 매주 다음 경기, 다음 경기에 치여 한 치 앞밖에 못 봤다. 지금 나와서 보니 여유가 있다. 오히려 나에게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아픈가.
“원래 부상이 거의 없었다. 허리가 아프길래 진통제를 먹고 경기하곤 했는데 빈도가 좀 잦아졌고 다리도 아팠다. 한국 와서 진단받으니 허리가 아니라 고관절 문제였다. 고관절 충돌 증후군과 피로골절이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권유했지만, 재활로 자연 치유되는 쪽을 택했다. 좋아지고 있다.”
이경훈은 골프 선수 중에서 가장 연습을 많이 하는 축에 든다.
-거의 안 쉬었으니 몸에 피로가 쌓였을 것 같다. 지금까지 스윙을 몇 번이나 했을까.
“몇 번 했는지 세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보다 연습을 오래 한 건 맞다. 내가 결과에 만족할 때까지 했다.”
-요즘 일과는 어떤가.
“운동하고 필라테스하고 수영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한다. 나머지는 가족과 지낸다.”
-볼은 쳐봤나.
“두 번이다. 골프장에서 친 건 아니고 연습장에서 쳐봤다. 의사 선생님은 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궁금해서 해봤다.”
-언제 투어에 돌아오나.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불안하고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여유가 생겼다. 가을 시리즈에 복귀할 거로 기대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 지금은 잘 했을 때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병가에서 돌아오면 첫 시즌 몇 경기에 뛰나.
“선수마다 다르다. 나는 19경기를 보장받았다.”
-US오픈에서 비슷한 나이의 저니맨 J.J. 스펀이 우승했다.
“스펀은 여러 번 같이 쳤다. 지난해 나랑 랭킹이 비슷해서 유난히 더 그랬다. 좋은 친구다. 한국 정서도 알고 농담도 많이 한다. 그가 우승해서 기뻤다.”
-스펀은 “지난해 골프에 목메지 않고 골프는 그냥 골프라고 생각한 뒤 성적이 좋아졌다”고 했다.
“중요한 얘기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선수들은 잘 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스펀이 대단하다.”
-골프가 아니면 가수를 했을 거라고 했는데 요즘 어떤 음악을 듣나.
“부활의 ‘아름다운 사실’을 자주 듣는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