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은 영원한가? 당연히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위대함을 잃게 되고, 아무리 위대한 철학이나 사상도 시대정신에 어긋나면 가치를 상실하게 마련이다.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마르크스 사상은 기껏해야 100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사상에서 미래를 보고 혁명을 꿈꾸었다. 꿈만 꾼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숫자의 젊은이들이 붉은 깃발 아래 생을 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냉전을 거치면서 혁명은 박제로만 남았고, 상처는 깊었다.
지난 12월 3일의 비상계엄과 내란을 저지한 주체는 국민이었지만 법률적으로 볼 때는 제6공화국 헌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가끔씩 헌법을 읽고 필사하면서, 헌법의 문장들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부사와 형용사가 없는 깔끔한 문장 속에서 빛나고 있는 민주주의 가치와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권’이 때로는 추상으로 때로는 구체로 잘 버무려져 있었다.
제6공화국 헌법은 1980년 오월항쟁과 1987년 유월항쟁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군부독재 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이었기에 한계도 뚜렷했다. 이 헌법을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 농민들이 ‘민주헌법 쟁취’라는 깃발을 들었다. 그 깃발 아래서 고문과 투옥과 살인을 당한 청춘들의 숫자는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지만 제6공화국 헌법은 피로 쓴 헌법 그 자체였다. 그리고 무려 38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제 5월 18일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광주에서 페이스북에다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을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재명 후보는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더 촘촘한 민주주의 안전망으로서의 헌법을 구축할 때”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 4년 연임제, 결선투표제 도입, 거부권 행사 제한과 국무총리의 국회 추천, 감사원 국회 이관,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 폐지, 비상계엄선포 관련 국회의 통제 권한 강화, 지방자치권 보장을 위한 헌법기관 신설,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제안했다.
가장 반갑고 눈에 띄는 제안은 지방자치권 보장을 위한 헌법기관 신설이었다. 인구소멸과 지역소멸, 지역간 소득 격차와 발전의 불균형이 심각의 정도를 넘어 폭발 직전의 임계치에 다다른 게 사실이다. 다행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헌법기관을 신설한다니 기대할 만하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제7공화국 헌법에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기본권으로서의 ‘자유권’의 확장은 물론이고 ‘사회권’까지 명문화해야만 한다. 사회권은 이미 1960년대에 유엔에서 정립된 용어로 ‘사회주의’와는 근본부터 다른 개념이다.
개정하는 헌법에 ‘사회권’을 강화하는 일반조항을 신설해야만 비로소 7공화국 헌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사회권은 이미 헌법에 규정돼 있다. 근로권, 교육권, 환경권, 복지권 등이다. 다만, 현재는 각 권리 증진을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로 명시되어 얼마든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를 ‘국민이 각 권리를 가진다’로 명문화해야만 한다. 현행 헌법처럼 최저 한계 보장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면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적극 보장토록 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계각층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토론하고 숙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가능할 것이다.
정도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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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공화국 헌법을 위하여 #인간 존엄성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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