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같은 크리스마스 영화에 질렸다면 이 영화 어떨까. 11일 개봉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사진)이다. 영화 ‘오펜하이머’ 배우 킬리언 머피가 자국 아일랜드 거장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토대로 제작·주연했다.
평범한 석탄 상인 빌 펄롱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수녀들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감금당한 소녀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1980년대, 가톨릭 교회와 아일랜드 정부의 묵인하에 갈 곳 없는 여성들이 무급 노동과 학대에 시달리고 신생아들이 죽어갔던 실존 보호소 ‘막달레나 세탁소’가 세상에 폭로되기 전이었다.
펄롱은 기어코 그 소녀를 위해 행동한다. 그렇게 그는 영웅이 됐을까? 원작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펄롱이 품은 연민은 동네를 장악한 교회를 거슬러선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깬다. 딸들을 순탄하게 키우려면 때론 남의 불행은 모른 척하라는 아내의 질책을 거역한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자기 파괴적이지만, 또 스스로를 구원한다.
펄롱은 방황하던 차였다.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여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삶이 공허한 순간 소녀를 발견했다. 이른 나이에 펄롱을 임신해 홀로 키우다 요절한 그의 어머니를 빼닮은 소녀다. 그때껏 믿어온 세상의 규칙을 배반하며, 그는 일생 넘치게 받고도 의미를 몰랐던 누군가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소설로 부커상 후보(2022)에 선정된 직후 인터뷰에서 키건은 “펄롱의 붕괴에 대한 이야기”이자, “시인 필립 라킨의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답”이라 설명했다. 라킨의 문장은 이것이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랑이다.’ 사사로운 붕괴가 굳건한 담을 허문다. 그렇게 사랑이 전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