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유족이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급발진 의심 소송에서 소비자가 승소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았으나, 약 2년 6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재판부는 유족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급발진 완전 인정 판례 전무…주요 사건 대법원에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부장 박상준)는 13일 오후 고(故) 이도현 군 유족이 제조사 KG모빌리티(KGM)를 상대로 낸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강릉 사고 손배소는 제조사 책임이 인정되는 첫 사례가 될지 주목받았으나 1심에선 유족이 패소했다.
현재까지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인정된 대법원 판례는 전무하다. 현행 제조물책임법 3조의2(결함 등의 추정)는 결함 추정에 대한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아닌 피해를 본 고객이 지게 하고 있다.

급발진 의혹이 있었던 주요 사고들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6년 8월 부산 남구에서 물놀이를 가던 일가족 4명이 숨진 부산 싼타페 사고는 유족 등이 제조사(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2심 모두 패소했다. 당시 택시기사 출신인 60대 운전자를 제외하고 아내와 딸, 외손자 등 4명이 숨졌다.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 민사5부는 2023년 5월 “운전자가 사고 당시 불상의 원인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못했거나 착오로 가속 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이 제출한 사설 감정 결과에 대해서는 “감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공정성과 객관성 문제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23년 7월 유족 측이 상고해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2018년 BMW 사고, 유일하게 제조사 책임 일부 인정
하급심 단계이지만 제조사 책임이 일부 인정된 경우도 있다. 2018년 5월 호남고속도로에서 BMW를 몰다 급발진 의심 사고로 운전자 부부가 사망한 사건은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유족이 패했으나 2심에서는 승소했다. 2020년 11월 항소심 재판부가 “BMW코리아는 유족에게 각 4000만원씩 지급하라”며 일부승소 판결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는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는 상태에서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 하에 있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며 차량 결함을 인정했다. 사고 발생 이틀 전 BMW코리아 직원이 차량 점검을 한 점, 시속 200㎞ 고속 주행 중 비상 경고등이 작동된 점, 사고 이전 운전자가 과속 습관이나 과태료 처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2심에서 제조사 과실이 인정된 유일한 사례로, BMW 측이 상고해 아직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 중이다.
형사사건에서도 차량 결함 여부 판단 갈려

민사가 아닌 형사재판에서는 운전자 무죄가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다만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 하에 피고인(운전자) 과실을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형사재판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아니다. 대법원은 2005년 11월 서울 마포구에서 벤츠를 몰다 10중 추돌사고를 낸 대리운전기사 박모씨에게 2008년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만 판단했다.
형사 사건에서도 재판부 판단은 갈린다. 2020년 12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캠퍼스에서 지하주차장을 나온 50대 운전자의 그랜저가 갑자기 질주해 60대 경비원이 치어 숨진 사고에 대해 1심은 무죄를, 2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고 달리는 중 여러 차례 브레이크등이 켜진 점으로 볼 때 차량 결함을 의심하기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나 2심에서는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 현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뒤집고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강릉 급발진 사고, 경찰은 운전자 '무혐의' 처분
강릉 사고에서는 경찰이 운전자인 할머니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운전자 과실에 의한 사고임을 뒷받침할 자료로 삼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 소송은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한 도로에서 티볼리 에어 차량이 배수로에 추락해 동승자인 이도현군이 숨지면서 시작됐다. 운전자인 이군 할머니가 약 30초 동안 “이게 왜 안돼, 도현아”라며 외치는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돼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