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디지털 지방의정, 자치분권 2.0 시대를 여는 열쇠

2025-09-18

한국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 지방의회의 역할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의사결정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자치분권 2.0 시대'가 개막하며, 지방자치의 중심은 단체장과 자치단체 중심에서 주민과 지방의회 중심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지방의회의 핵심 업무인 정책 발굴, 의안 심사, 예산 심의, 조례 제정 등은 여전히 상당 부분 수기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아날로그 방식은 지방의회가 주민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신속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장애물이 되며, 지방자치의 본질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는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하며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 전자민원, AI 분석, 데이터 기반 정책 수립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자치분권 시대에서 지방의회가 주민 신뢰를 확보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데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의정포털, 지방의회 혁신의 출발점

세계 각국은 이미 디지털 거버넌스를 통해 의회 운영과 주민 참여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Decidim 플랫폼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플랫폼은 주민이 온라인에서 직접 제안하고 토론하며 투표까지 할 수 있게 만든 참여 시스템이다. 2017년 시범운영을 통해 시민이 1만1000건의 제안을 올렸고, 그 가운데 약 8000건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됐다.

이후 Decidim은 꾸준히 발전해, 최근 2024년에는 BSC(Barcelona Supercomputing Center)와 협력해 기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시민 참여 과정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더 체계적으로 공개하고, 설문조사나 의견 수렴 결과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기능을 도입했다.

또 인구통계 정보를 함께 제공해 참여 맥락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행정기관이 정책 효과를 분석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형 데이터 기능을 강화했다.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확보했지만, 지방의회만큼은 중앙정부·지자체의 디지털 혁신 흐름을 충분히 따라잡지 못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은 디지털 기반의 지능형 지방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디지털 지방의정 포털 1단계 시스템'을 지난 6월 개통했다. 부산, 대구, 대전, 울산, 강원, 충북, 충남, 전남, 경북, 경남, 제주 등 11개 시도의회에 우선 도입돼 운영을 시작했다.

의정포털은 플랫폼 기반 시스템으로 의정활동 지원, 의정 소식 제공, 협업·소통 기능, 행정지원, 편의기능 등 다양한 모듈을 포함한다. 전자결재, 일정 관리, 출석, 발언 현황 관리, 회의록 자동 생성, 문서 관리, 설문, 전문가풀, 동호회 관리 등 업무 전반을 디지털화했으며, 클라우드 기반으로 데이터를 안전하게 통합 관리할 수 있다.

◇효율·투명·참여, 디지털이 만드는 새로운 지방의회

디지털 지방의정은 단순한 시스템 구축을 넘어 지방자치의 업무 효율, 의사결정 정교화, 정책 대응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클라우드 기반 전자결재와 OCR 기반 문서 검색·메타데이터 관리 기능을 통해 수기 작성으로 며칠 걸리던 보고서 작성과 배포가 몇 시간 내 완료된다.

모든 의정 활동과 의사결정 과정이 디지털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투명성도 강화된다. 회의록 자동 생성과 공개, 전자결재 기록 등은 주민이 지방의회 활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정책 결정 과정을 검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주민 참여 기회가 확장된다. 설문, 제안서 제출, 온라인 피드백 기능 등을 활용해 주민은 단순 정책 수용자가 아니라 정책 설계자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 의정포털은 데이터 기반 정책 결정 환경을 제공한다. 의정 활동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면 정책 수립과 지역 문제 해결을 과학적·정량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 안전한 데이터로 신뢰받는 디지털 의정

의정포털이 클라우드 기반으로 구현돼 전국의 의정 데이터가 축적되면, 향후에는 이를 주민서비스 혁신에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분석까지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정보보호, 데이터 활용 안정성 확보 등 AI 도입 과정에서의 위험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개발원은 최신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주민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투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행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전국 확산, 지속가능한 디지털 지방의회

현재 개발원은 의정포털 2단계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기존 11개 시도 의회에 광주광역시의회가 추가되며, 의정 자료 유통, 입법조사, 의안 처리 등 고도화 기능을 탑재하고 기초의회까지 확산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전국적 확산을 위해서는 정책 지원, 예산 투자,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수적이다. 지방의회 구성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 데이터 활용 문화 정착, 디지털 조직문화 확립도 병행돼야 한다. 개발원은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운영, 클라우드 안정성 확보, 첨단 보안 기술 적용, 실무 지원 조직 운영 등 다각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전국적 확산은 의회 간 협업, 정책사례 공유, 데이터 분석 기반 평가 등을 가능하게 하며, 지방자치가 전략적·투명·참여적 구조로 발전하는 기반이 된다.

◇디지털 지방의정,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글로벌 혁신 모델

자치분권 2.0 시대의 성공은 디지털 지방의정의 실질적 도입과 정착에 달려 있다.

지방의회 구성원의 역량 강화와 데이터 활용 문화 정착은 지방자치의 지속 가능한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시스템 운영과 안정적 관리 기반 마련은 미래 세대가 신뢰할 수 있는 지방자치 모델을 만드는 초석이 된다.

디지털 지방의정은 주민과 지방정부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실현한다.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사회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민과 연결을 강화하는 과정은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국제적으로 벤치마킹되는 혁신 모델로 도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디지털 지방의정은 지방자치의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길이다. 주민과 지방의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 기술과 협력이 조화를 이루는 혁신적 지역사회, 이것이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세계에 보여줄 글로벌 경쟁력의 상징이다.

박덕수 한국지역정보개발원장 depark@klid.or.kr

〈필자〉연세대 행정학과와 미국 시라큐스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 후 △행정서비스통합추진단장 △공공데이터정책관 등 디지털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또 인천광역시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지자체의 정책 현장 일선에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들을 추진하며 현장 행정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2024년 10월부터는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으로 재임 중이며, 전국 지자체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AI 기반 행정 혁신 모델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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