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프랑스·독일 정상의 악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1-23

프랑스와 독일은 오랫동안 유럽의 앙숙이었다. 나폴레옹이 황제이던 1800년대 초반 프랑스는 유럽의 패권국으로 프로이센 등 오늘날 독일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까지 쥐락펴락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복수심에 사로잡힌 프로이센은 대규모 군사력 양성에 나섰다. 1871년 비스마르크 총리가 이끌던 프로이센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독일 통일을 달성했다. 반면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두 주(州)를 독일에 빼앗기는 굴욕을 맛봤다. 20세기 들어 터진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적이 되어 싸웠으며, 그로 인해 수백만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와 독일은 손을 잡았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탄생이 그 시작이었다.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역에 풍부한 철광석과 독일 루르 일대에 많이 매장된 석탄을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독일은 알자스·로렌의 철광석을 탐내고 프랑스는 루르의 석탄에 눈독을 들인 것이 양국 간 불화의 원인으로 작용해 온 만큼 아예 분쟁의 소지를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참여 의사를 밝히고 이탈리아도 가입하면서 ECSC는 1960년대 유럽공동체(EC)로 확대됐다. 이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의 전신이다.

EC는 오랫동안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권을 쥐고 다른 회원국들에 강한 리더십을 행사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현 EU도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독일 양자 회담에서 정책의 골격이 마련되면 이를 회원국 전체 회의에 안전으로 올려 추인을 받는 식이다.

영국은 프랑스나 독일보다 한참 늦은 1973년에야 EU(당시 EC)에 가입했다. 강대국으로서 영국은 EU에서 프랑스·독일과 대등한 존재감을 갖길 원했다. 하지만 이는 힘든 일이었다. EU 집행위원회 산하 기구의 관료들은 이미 프랑스·독일 중심의 운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 결정을 내린 것은 EU 의사 결정에서 영국의 역할이 제한적이란 점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EU의 양대 축으로 통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듯하다. 프랑스는 2024년 7월 총선 결과 여소야대 의회가 탄생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의 힘이 빠졌다. 독일은 2024년 12월 의회에서 올라프 숄츠 총리 내각 불신임안이 가결되며 오는 2월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있다. EU를 이끌어야 할 양국 정상이 둘 다 국내 정치에서 입지가 약화하면서 EU 다른 회원국들 상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여유가 없는 상태다.

지난 22일 2차대전 후 프랑스·독일의 화해를 상징하는 엘리제 조약 체결 62주년을 맞아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가 만났다. 이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맞아 두 나라는 물론 유럽 전체가 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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