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블라인드’에 갇힌 바이오… R&D 혼선 우려

2025-07-10

특허 출원 뒤 18개월간 내용을 비공개하는 규정이 바이오 업계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 유출을 막고 출원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같은 기술이 출원돼 있었다는 사실을 사후에야 인지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연구개발 초기 단계부터의 특허 검토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행 국제 특허제도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주관하는 ‘특허협력조약(PCT)’에 따라 특허 출원일로부터 18개월 동안 출원 내용을 비공개로 유지한다. 이는 기술 모방을 방지하고 출원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주요국을 포함해 약 160개국에서 통용된다.

문제는 이 비공개 기간 동안 유사 기술의 선출원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이오 산업처럼 기술의 유사성과 특허성 판단이 까다로운 분야에서는 이로 인해 연구개발(R&D) 과정에서 중복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는 데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바이오기업 인투셀은 중국에서 먼저 출원된 유사 특허가 18개월 보호기간 이후 공개되면서, 자사 핵심 물질과의 중복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바 있다.

산업재산정보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원 중인 특허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길이 일부 열려 있지만 이는 국가 안보나 공공안전 등 특수한 목적에 한해 허용되는 경우로 민간 기업이나 연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허청 관계자는 “민간의 기술 개발 편의를 이유로 미공개 특허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며 “기술 유출이나 외부 위협 등의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업이 사전에 할 수 있는 대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논문 발표, 학회 자료, 유사 공개특허의 분석 등을 통해 최대한 중복 가능성을 줄이고, 제도적 사각지대를 보완할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출원공개 유예제도는 기술을 조기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기술을 지킬 수 있다”며 “다만 국가 연구개발 과제에서만이라도 특허 전문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예산 항목을 신설하면 개발 초기부터 특허 확보 가능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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