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유럽시장 뚫는 K방산…'이 국가' 도움 절실한 이유 [Focus 인사이드]

2025-11-14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분쟁이 늘어가면서 군비 투자가 폭증하고 있다. 2025년 4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공개한 ‘2024년 세계 군사비 현황’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2024년 군사비 총액이 2023년보다 9.4% 증가한 2조718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추세는 전쟁이 한창이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많은 국가가 군비를 늘렸다는 걸 보여준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도 유럽·우리나라 등의 군비 증강의 이유가 되고 있다.

군비 지출 증가는 필연적으로 군사 장비 도입의 확대로 이어진다. K방산의 최근 실적은 이런 동향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K방산의 수출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동남아에 치중했지만,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지역, 그리고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까지 확대됐다.

만만치 않은 유럽 공략, 새로운 전략과 파트너가 필요하다

유럽 지역은 전통의 군사 강국 독일과 프랑스가 버티고 있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완제품 기준으로 2016년 K9 자주포의 핀란드 수출을 시작으로 노르웨이·에스토니아·폴란드 등으로 이어졌고, 폴란드가 K2 전차 등을 대규모로 사면서 K방산의 유럽 진출의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유럽의 방산 강국들이 생산을 늘리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수요에도 적극 대응하지 못하면서 그 빈틈을 가격과 성능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K-방산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도 자체 생산에 투자한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유럽 시장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 등의 견제가 본격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비 증액 압박과 관세 압박으로 미국제 무기 도입이 늘면서 K-방산의 유럽 수출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새로운 파트너를 개척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무기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유럽 국가는 폴란드가 유일하다. K9 자주포, K2 전차, 천무 다연장 로켓 등 다양한 무기를 현지에서 생산하여 유럽 수출의 전진 기지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점점 블록화가 심해지는 유럽 시장에 한국형 무기가 아닌 유럽화한 무기를 팔아야 한다. 첫 단계는 폴란드 요구사항에 맞춘 K2PL 전차 같은 현지 맞춤형 무기 생산이다. 그다음 단계는 현지 요구사항을 반영해 현지에서 생산하는 유럽형 K무기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생산해 유럽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장비를 통합해야 한다. 즉, 유럽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셋째는 현재 생산하는 무기가 아닌 차세대 무기를 유럽과 공동 생산하는 것이다. 이 역시 유럽의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하다.

둘째와 셋째 단계는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춘 국가라야만 한다. 유럽 방위산업 강국은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고 스웨덴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독일과 프랑스는 일부 협력이 가능하지만, 자국 업체들의 생존을 위해 K방산을 견제하는 입장이기에 파트너가 되기는 어렵다. 이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유럽 시장 개척을 위해 적당한 파트너의 조건을 갖춘 국가는 몇 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하게 교류 협력을 펼치고 있는 나라로 네덜란드다.

첨단 기술과 장비 분야에 강점

잘 알려지지 않지만, 네덜란드는 방위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부품·소재 분야에서 강한 국가다. 주로 중소·중견 기업들로 유럽 내에서도 첨단기술 개발 및 가공 등을 통해 민수와 군용이 가능한 이른바 ‘이중용도 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많다.

네덜란드 정부 자료에 따르면 방위·보안·항공우주 분야에 속하는 기업은 600~800개며, 이 가운데 200개 회사가 우리나라 방위산업 진흥회와 유사한 네덜란드 방위산업협회(NIDV)의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NIDV에 속한 일부 기업이 네덜란드 정부와 협력해 국제 비즈니스 파트너십(Partners for International Business, PIB)’ 구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 협력에 나서고 있다. PIB엔 우리나라와 많은 연구 협력을 하는 네덜란드 응용과학 연구소(TNO)와 네덜란드 항공우주연구소(NLR) 외에 여러 기업이 참가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24년 발표한 산업·혁신을 위한 국방 전략(D-SII) 2025~2029를 통해 양자·스마트 소재·우주·정보시스템·센서의 5개 분야를 핵심 분야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여기에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강세 분야인 해양 산업도 별도로 추가돼 있다. D-SII의 5개 분야는 우리도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직 선진국 대비 뒤처지는 분야이기 때문에 협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는 선행기술의 연구 개발(R&D)·소부장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산업 생산 능력에서 강점을 가진다고 분석이다. 네덜란드의 R&D 생태계는 TNO와 NLR 외에도 해양연구소(MARIN)와 델프트 공대 등을 통한 정부-산업-학계의 연계를 통해 강화한다.

네덜란드의 첨단 부품·소재 분야 강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반도체 노광장비 회사인 ASML, 차량·통신용 반도체 업체 NXP, 바이오 고분자 소재 등으로 유명한 DSM-피르메니히(Firmenich)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무기 분야에는 탈레스 네덜란드가 해군 상륙함 독도함에 단 스마트-L 레이더와 해군 함정에 탑재한 골키퍼 근접방어 시스템(CIWS)를 납품했고, 지금도 네딘스코라는 회사가 국내 수 옵틱스를 통해 협력하는 등 다양한 분야와 장비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우리나라에 대한 높은 관심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에 조선 시대 『하멜 표류기』, 그리고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많이 알려져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반도체 정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는 얼마나 우리나라에 많은 관심을 보일까? 올해만 해도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양자, 해양·풍력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네덜란드 사절단이 한국을 찾았고, 국방 분야로는 지난해 인공지능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회의(REAIM) 공동개최 당시 네덜란드 국방장관의 방문 후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같은 전시회에 국가관으로 참여했다.

2025년 5월 전쟁기념관 피스앤파크 컨벤션에서 NIDV와 6개 회사 대표단이 참가한 한-네덜란드 방위산업 협력 세미나가 열렸고, 국내에서 많은 기업 관계자가 참여했다. 6월 중순 네덜란드군 영관급 장교들로 구성된 네덜란드 국방대학교 연수단이 방한해 여러 기관과 연구소를 방문하여 양국 간 교류의 기회를 가졌다.

네덜란드의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이 무관부를 설치한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네덜란드는 일본 대사관 무관부가 우리나라를 함께 관할했으나, 2023년 11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에 무관부를 설치했고, 이후 다양한 교류 활동을 주관하고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네덜란드 기업들은 우리 기업들과 다양한 교류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MADEX 기간에 LIG넥스원과 탈레스의 협력 MOU에 서명했고, ADEX 기간에는 KAI와 NLR이 차세대 항공전투 시스템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주관으로 한국·네덜란드 유무인복합(MUM-T)·자율시스템 연구개발 세미나도 열려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11월 중순 열릴 네덜란드 방산전시회 NEDS에 다수의 한국 기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국가와 기업 모두 우리나라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양국 기업들이나 연구기관들은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 구조적인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앞으로 양국이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 기술인 양자·지능형 체계 개발 협력, 방산분야 중소, 중견기업 간 교류를 통한 기술·시장 확대 등을 위한 채널이 수립되어, 협력의 폭을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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