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TV를 틀어 MBC로 채널을 돌렸다. <스포츠 매거진>에서 보던 박소영 아나운서가 당황스러움을 억누르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반복해서 재생하며 방금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틀림없이 당직을 서다가 황망히 뉴스 특보를 진행하는 상황이었을 게다. 12월 3일, 밤 11시에 벌어진 일이다.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경찰의 통제를 뚫고 국회에 모이고, 어떤 의미로도 와선 안 될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려 하는 긴박한 와중에 MBC에선 <PD수첩>으로 익숙한 오승훈 아나운서가, JTBC에선 역시 전 <뉴스룸> 메인 앵커로 익숙한 오대영 기자가 당직자와 바통을 터치하고 특보 2부를 진행했다. 그 사이에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항목이 포함된 계엄사령부 1호 포고령이 선포됐다. 새벽 1시 즈음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고, 각 정당 대표들이 이제 계엄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나도 잠들지 못했고 특보도 계속됐다. 새벽 내내 계속된 각 방송사의 뉴스 특보 중계는 그저 현재 벌어지는 일을 스포츠 중계하듯 그대로 전달하려는 것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었을까.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바랐던 것은 후자였던 것 같다. 언론이 무력한 관찰자가 아닌, 민주화된 법치 국가의 이념을 지키는 감시자로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 이것은 12.3 사태 이후 더 첨예하게 제기되는 언론의 공정함과 책무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만약 언론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사안에 대한 가치 중립적 태도로만 받아들인다면, 지난 2주간 두 번의 예외적인 특별 편성하며 총 세 번 방영한 <PD수첩>은 공정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은 방송일 것이다. 매주 화요일 편성이지만, 12.3 사태가 벌어진 이틀 뒤 목요일에 ‘긴급 취재:서울의 밤-비상계엄사태’ 편을, 지난 12월 9일 월요일엔 ‘긴급 취재:서울의 밤2-내란국회’ 편을 방송하며, 이번 사건을 취재하고 또한 비판하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 정규 편성을 무시하며 특정 주제에 매진했다는 것만 따지면 어디론가 치우친 보도라고, 또한 해당 방송들에서 12.3 사태에 대한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에선 편파적인 보도라고 이야기할 법하다. 특히 9일 방송 마지막 멘트에선 “그(윤석열)가 법적 책임을 지는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수사기관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겁니다”라며 하야 혹은 탄핵의 불가피함을 전제했다. 이미 여당인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 당론으로 탄핵을 한 번 막은 상황에서 철저히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반대편에 섰으니 어떤 의미로든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PD수첩> 외에 타 방송사의 수많은 보도에서도 법학자 인터뷰를 통해 검증됐듯, 헌법에 근거한 범위를 벗어난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통제는 이미 위헌적 내란으로 봐야 한다. 이 국가적 위기 상황 앞에서 언론의 중립이란 정확히 어떤 실천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선 중립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 무책임하다는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 새삼 선명히 알 수 있는 건, 언론의 공정과 중립이란 개념을 민주주의 국가의 절차적 정당성에 기여하는 규범적 과제로 봐야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언론의 공평무사함이라는 것을 다양하게 추구되는 모든 정치적 입장들에 대한 중립으로 정의하면, 언론은 그러한 가치지향의 근원에 있는 욕구를 해석하거나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여하한 행위도 할 수 없다. 그 각각의 근거들은 동일하게 정당할 수 없기에 이 논의에 진지하게 끼어드는 순간 완벽하게 중립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입장들에 대한 완벽한 중립이란 그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거나 침묵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직관적으로도 언론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어긋난다. 언론의 공평무사함과 중립성이란, 불일치하는 정치적 입장들이 더 나은 논거를 통해 조정될 수 있도록 각 입장의 믿을만하거나 그렇지 못한 근거들을 일관적인 기준으로 구체화해 함께 다루는 것이지, 그 모든 입장이 동등하게 들어볼 만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가령 안창호 현 인권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을 가르친다면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할 때, 창조론도 진화론처럼 현대의 과학적 검증을 견뎌낼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최대한의 중립이지, 둘을 동등한 지위로 다뤄주는 게 언론의 중립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야당 모두가 주장하는 ‘탄핵’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질서 있는 퇴진’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 게 언론의 진정 중립적 태도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표현은 마치 탄핵이 ‘무질서한 퇴진’인 것처럼 교묘히 곡해하는 언어적 기망행위다. 의회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실질적 내란 행위에 대해 바로 그 의회에서 헌법이 인정한 권리로 투표를 통해 처분하는 것보다 질서 있는 절차가 어디 있는가. 가장 질서 있는 방식의 퇴진을 거부하고선 질서를 말하는 이들을 사기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다분히 편파적인 것이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또 다른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어떻게 탄핵을 성사시킬지에 대한 진행자 김현정 PD의 질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지적한 순간이 소소히 화제가 된 건 같은 맥락이다. 김 의원은 진행자가 너무 세상을 기술적으로 본다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도전받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게 언론의 의무며, 탄핵을 위한 교섭을 언론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상당히 신랄하게 답했다. 적어도 이 사안에서만큼은 김 의원 말이 맞다. 언론에 대한 비민주적 통제를 선포한 내란 행위에의 동조에 대해,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압박의 여론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언론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동안 어떤 정치적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준석처럼 자극적인 말을 해줄 패널들을 섭외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판을 깔아주고 손 놓고 중계하는 것이 마치 언론의 중립성 의무인 것처럼 책임을 회피해온 해당 프로그램 및 비슷한 ‘뉴스쇼’ 형식의 실천적 모순이 이번 내란 사태로 선명해진 것에 가깝다. 반면 내란 시도 다음 날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국민에게 총을 들고서도 계엄은 나의 권한 활용이라 했다는 피의자를 지키는 게, 아니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국민에게 국민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합니까. (중략) 이런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을 배신하지 말자고 뜻을 모을 게 아니라, 그들이 배신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언제나 국민들이란 걸 명심해야 합니다.” 여당과 행정부를 향한 이 직접적 발언을 언론의 중립성 의무 위반이라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언론의 중립과 공정이 가능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을 지키는 노력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윤석열의 내란 시도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두 가지 상반되는 진실을 알려줬다. 민주주의는 의외로 허약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전자의 진실을 토대로 후자의 진실을 유지하는 것은 시민의 연대와 정치적 책임감이라는 진실 역시 새삼 생생한 삶의 형태로 경험됐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자기 인식을 돕는 파트너로서의 언론의 역할 역시 관념이 아닌 피와 살로 이뤄진 실천적 세계에서 다시금 검증됐다. 무력한 관찰자인가, 함께 하는 감시자인가. 황망함과 두려움과 분노로 밤을 지샌 12월 4일 새벽의 질문은 아마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