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길고 긴 밤이었다. 한밤중에 국회를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선 시민들부터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 그리고 뉴스와 영상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국민들까지 누구 하나 편안히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말 그대로 충격과 분노, 그리고 안도감이 파도처럼 번갈아 밀려왔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결이 늦었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이 무렵 국회 안팎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야밤에 국회로 달려나온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서고 둘러싼 것이다. 시민들은 위법한 비상계엄을 거부하며 계엄군들의 총부리 앞에서, 장갑차 앞에서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어떻게 시민들은 그 짧은 시간에 국회로 모일 수 있었을까. 그들은 무슨 용기로 무장한 계엄군들과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세대를 불문하고 엄동설한에 밤마다 거리로 나와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소추를 외치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 열흘 전, 공포와 희망이 교차하던 그즈음, 지구 반대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을 하고 있었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작가가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접한 후 내내 붙들었던 이 화두는, 이제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과거 불법적인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자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한 시상식이 펼쳐지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눈발이 날리는 밤하늘을 위태롭게 비행하는 헬기에서 내린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난입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악몽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기괴한 장면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진다.
‘비상계엄’. 모두가 함께 지켜본 그 장면을 누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고, 구국의 결단이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헌법에 명시된 극히 제한적인 대통령의 권한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 비상계엄 아래 저질러진 불법적인 국가폭력에 의해 사라져간 수많은 희생자와 그들의 유가족에게 비상계엄은 곧 폭력과 억압, 죽음의 언어였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이를 웅변한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제주 4·3평화공원이나 광주의 국립5·18민주묘지 등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다. 또한 여전히 유골조차 찾지 못하거나 연고를 확인하지 못한 희생자가 부지기수이다. 제주 4·3과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0·27법난, 그리고 5·18민주화운동 등등, 이 비극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법한 비상계엄 속에서 자행된 일들이라는 것이다.
작가 한강은 또 말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그 의문에 대해 시민들은 학살과 희생의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과 자발적 참여로 대답을 대신하면서 그날 밤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계엄군의 폭력과 난동을 막아선 것은 용감한 군인도, 지체 높은 국무위원도, 시민의 지팡이를 자처하는 경찰도 아니었다. 오직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서 몸부림치고 울부짖으며 지켜낸 승리였다. 전국에서 빛으로 수놓은 밤하늘은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산 증거였다. 과거를 기억하고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국민들이, 다시는 그 처참하고 무력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2024년 12월3일, 우리는 한강 작가의 물음에 대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했다.
시민들 저마다 손에 쥔 응원봉을 흔들면서 외친 것은 폭력의 역사, 광기의 역사를 허용할 수 없다는 엄중한 선언이었다. 또한 도움을 받은 현재가 과거에 감사를 보내고, 우리를 구한 역사에 화답하는 장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