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100명 줄섰다...'샤넬 오픈런' 뺨치는 '국감 오픈런'

2025-10-31

지난 29일 한 상임위원회 종합감사에 출석하는 피감기관 직원 A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 30분이었다. 해도 뜨지 않아 어둠이 짙푸르게 깔려있었지만, A씨 앞에는 또 다른 피감기관 관계자 4~5명이 먼저 도착해 국정감사 ‘오픈런’을 하고 있었다. 통상 오전 10시에 시작해 저녁 늦게 마무리되는 국정감사 특성 상, 감사장 앞에서 대기할 편한 장소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같은 날 오전 7시, 국회 본관 문이 열릴 시간이 되자 대기 인원은 100여명으로 불어났다. 품에는 가방을, 손에는 국정감사에 대비한 자료가 담긴 짐을 든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삼삼오오 뛰어갔다. A씨는 “매년 이렇다. 기관장이 대기할 장소도 각 기관이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 빨리 와야 기관장에게 더 좋은 대기 장소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했다.

겸임 상임위원회 일정을 제외한 대다수 상임위원회의 국정감사가 막을 내린 지난 29~30일, 종합감사가 진행되는 국회 본관 각 감사장 앞은 피감기관 직원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중계TV가 설치된 대기 장소 뿐만 아니라 복도까지 관계자들이 몰렸고, 길어질 대기시간에 대비해 돗자리를 깔거나 무지개색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지난 30일 오후 3시쯤 본관 6층엔 기자가 본 대기 인원만 300명이 넘었다.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피감기관 직원들은 “대기를 어디서 할지가 제일 큰 고민거리”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9일 한 상임위원회 종합감사에 참석한 피감기관 직원 B씨는 “저는 다행히 괜찮은 자리를 선점했는데, 아까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갖고 다투더라”고 했다. 임신 중기에 접어든 또 다른 피감기관 직원은 “오전 9시에 와서 8시간째 바닥에 앉아있다”고 했다.

조금 늦게 도착해 책상이 있는 대기 장소를 선점하지 못한 관계자들도 각자의 생존법이 있다. 가져온 간이 의자를 복도 한 구석에 펼치거나, 여행용 캐리어 가방과 종이 박스를 책상처럼 활용하는 식이다. 캐리어 가방조차 없는 사람들은 본관에 있는 자료 수집함 위에 전자기기를 올려두고 국정감사를 시청했다.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국정감사 질의 대상이 되면 언제든 뛰어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 가 있을 수도 없다”고 했다.

피감기관 직원 D씨는 “모두가 힘들어서 그런지, 피감기관 직원들 사이에는 전우애 같은 것도 피어난다”고 했다. 본인이 가져온 간이 의자를 다른 기관에게 빌려주거나, 좋은 자리를 잡는 ‘꿀팁’을 공유하는 식이다.

각 상임위의 위원들이 호통을 치거나 여야 사이 충돌이 격화할 땐 생중계를 보는 피감기관 직원들 사이 긴장된 분위기도 감돌았다. “저희 기관도 언제든 혼날 수 있어 걱정”(30일 국정감사에 참석한 피감기관 직원)이라는 것이다. 오전부터 회의장 앞에서 대기했지만, 감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 개의 질문도 받지 못한 피감기관도 상당하다. 29일 국회에서 만난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준비를 많이 해왔는데 질의를 받지 못해 다행이면서도 아쉽다”고 했다.

‘오래 대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피감기관 직원들은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힘들긴 하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일이니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30일 국회 본관 6층 구석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피감기관 관계자는 “기관들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검증하려고 국정감사를 하는 것인데, 이 정도 수고를 겪는 건 당연하다. 다만 감사와 관계 없는 막말이나 고성이 오가는 건 솔직히 맞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피감기관 관계자들의 대기 장소 마련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어렵다. 업무 공간 외에 여유 공간을 찾는 게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피감기관에서 직원들 여러 명이 오시는 걸 막을 수도 없다. 본관 곳곳에서 대기하시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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