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철학] 풀을 이기는 법(2)

2024-11-14

우리 부부가 농사짓는 덤바우는 밭 예닐곱 덩이 비탈 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년 이 중의 한두 밭은 놀리는데 일부러 휴경하는 것이 아니라 버거워 그렇습니다. 놀리는 밭은 한 해가 가기도 전에 무성한 풀밭으로 변합니다. 산딸기나무, 환삼덩굴, 달맞이, 개망초가 단연 눈에 띄는 풀인데요. 들여다보면 바랭이를 비롯하여 땅에 바싹 엎드린 풀도 지천입니다. 심지어 비단풀 같은 약초도 눈에 띕니다.

예로부터 이런 밭을 푸서리라고 불러왔더군요. 풀이 서리 내린 것 같다는 뜻이겠습니다. 서리는 ‘대기의 온도가 낮을 때 공기 중에 있는 습기가 지표면이나 물체 표면에 물방울을 이루어 얼어붙어서 생긴 결정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일교차가 크고 낮은 기온이 0도에 가까울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맑고 바람이 거의 없는 새벽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늦가을 무서리 세 번 지나야 된서리가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몇 년째 그 말씀을 덤바우에서 가늠해보지만 매번 알 수 없더군요. 아내는 그저 느닷없는 된서리는 없고 전조증상이 있음을 깨우치는 말로 치부합니다만, 저는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요즘을 사는 우리는 전통을 관습이나 전례로 격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경제적인 급격한 변화와 발전이 예스러움을 모자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농업에서는 이러한 경향과 추세는 무효입니다. 기후변화 또는 기후재난 시대를 이미 겪고 있는지라 많은 농업 전문가들이 전통농업의 방법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인류의 농업은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이룬 것 중에 이만큼 유서 깊은 문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 역사만큼이나 전통농업에 깃든 기술 또한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전통의 재해석 또는 계승

전통적인 풀 관리는 농생태학의 통합잡초관리(Integrated Weed Management)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방법론입니다. 다양한 잡초 관리 방법을 조합하여 잡초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함으로써 풀의 저항성 발달을 억제하는 이 전략은 오랜 세월 동안 농민들이 쌓아온 전통 농업 지식의 핵심 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전통 농업 지식은 단순한 경험적 지식을 넘어, 생태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땅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는 전통 농민이 유난히 생태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부분적 순응이 농사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잡초는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토양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요소로 암묵적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통 농업에서 김매기는 제초 행위를 넘어 작물 뿌리 주변의 흙을 풀어주어 작물의 성장을 돕는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잡초와 작물, 토양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전통 농업 지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 농업에서 김매기는 단순한 제초 행위를 넘어 벼 뿌리 주변의 흙을 풀어주고 벼의 생육을 돕는 역할까지 수행했습니다. 이는 잡초와 작물, 토양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전통 농업 지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돌려짓기(윤작)를 해야 하는 이유

농업 생태계는 비료 사용, 정기적인 경운, 수확 등으로 인해 자원(양분)이 대체로 풍부하여 잡초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반복적으로 제공합니다. 또 인위적 관리는 농업 생태계를 자원이 규칙적으로 방출되는 초기 천이 상태로 유지시켜 새로운 잡초가 정착하기 쉽게 만듭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물 군집과 그 환경이 변화하는 과정을 천이라고 합니다. 초기 천이 단계에서는 토양이 불안정하고 영양분이 제한적이며, 햇빛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빠르게 성장하고 번식하는 종, 즉 선구종인 잡초가 우세합니다. 농민들은 작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토양을 경운하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수확합니다. 이러한 농업 활동은 자연 생태계와 달리 생태계의 천이 과정을 초기 단계에서 끊임없이 반복시킵니다. 잡초의 번성을 만족시키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셈이죠. 밭갈이는 역설적으로 잡초의 조기 발아를 거드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돌려짓기는 잡초 군집을 변화시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매년 잡초가 경험하는 조건을 변경함으로써 토양, 영양소, 빛, 수분에 대한 경쟁 환경을 변화시켜 특정 잡초 종이 우점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또 잡초 군집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잡초의 전체적인 발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나타납니다.(작물과 잡초의 동시적 다양성)

돌려짓기는 잡초가 이용 가능한 자원을 줄여 잡초의 생장을 억제합니다. 예를 들어, 양분 요구량이 다른 작물을 번갈아 재배하면 특정 영양소를 선호하는 잡초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자원 가용성 감소) 또, 작물의 생장과 발달을 촉진하여 잡초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합니다.(작물의 경쟁력 강화) 아울러 잡초의 발아, 생장, 번식을 방해하여 잡초 개체군의 크기를 줄입니다.(잡초 생활 주기 방해)

돌려짓기(윤작)의 농생태학적 의의

먼저 돌려짓기의 농생태학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돌려짓기는 단순한 농업 기술을 넘어 농업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킵니다. 다양한 작물을 번갈아 재배함으로써 농업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을 증진시킵니다. 또 다양한 식물 종의 재배는 더 많은 곤충, 미생물, 토양 동물을 유인하여 먹이 사슬이 형성되고 따라서 생태계의 안정성이 높아집니다. (생물 다양성)

서로 다른 작물은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방식과 양이 다르기 때문에 돌려짓기를 통해 특정 영양소의 고갈을 방지하고 토양 비옥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콩과 식물은 질소를 고정하여 토양에 질소를 공급하는 반면, 옥수수는 질소를 많이 소모합니다. 콩과 식물을 옥수수와 번갈아 재배하면 토양의 질소 균형을 유지하고 옥수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영양분 순환)

돌려짓기는 토양의 물리적 구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깊게 뿌리를 내리는 작물은 토양을 깊이까지 파고들어 토양의 통기성과 배수성을 향상시킵니다. 또한 잔뿌리가 많은 작물은 토양 입자를 결합하여 토양 침식을 방지합니다.(토양 구조 개선)

특정 작물에 특화된 병해충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작물을 번갈아 재배하면 병해충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생활 주기를 방해하여 개체수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병해충 억제)

돌려짓기를 통해 작물의 경쟁력을 높이고, 잡초의 발아와 생장을 억제하는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 작물을 활용하여 토양 피복을 통해 잡초 발생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잡초 억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돌려짓기는 전통적으로 농업 기술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대규모 단작 농업이 주된 흐름으로 바뀌면서 포기된 방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태계의 전반적인 순환을 심각하게 거역함으로써 수많은 부작용을 겪게 되자 돌려짓기는 다시 권장되고 있으나 비료와 화학농약, 제초제를 무기로 단일 작물을 연속적으로 재배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농가가 여전히 대세입니다.

이근우 시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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