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톡] 벽에 가로막힌 노동자의 삶과 꿈…쿼드 신작 '엔드 월'

2025-09-09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서울희곡상 수상작 연극 '엔드 월(End Wall)-저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가 극장 쿼드에서 개막을 알렸다. 2021년 평택항 일용직 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출발해 인간의 삶과 죽음, 꿈의 의미를 탐색한다.

10일부터 28일까지 3주간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을 앞둔 '엔드 월'이 9일 첫 공개됐다. 아성이라는 이름의 노동자가 항만 컨테이너에 깔려 숨이 끊어지고, 그 뒤에 자신과 비슷하게 죽어간 무명을 만나 죽음의 이유와 삶의 의미, 벽 넘어의 꿈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연극이다.

'엔드 월'은 제2회 서울희곡상에서 "소재에 접근하는 태도의 고유함, 품위 있는 언어, 세련된 극 구성과 인물 배치, 디테일을 조화롭게 갖춘 수작"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수상에 성공한 작품이다. 단순한 비극의 전후 관계와 인물 심리를 연역적 추리 방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던지고 극중 인물들은 각자의 깨달음을 향해간다.

극을 쓰고 연출을 도맡은 하수민 작가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알포인트'의 미술작업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대 위 거대한 개방형 컨테이너를 배치하며 극중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함께 육중하고 거친, 그리고 막막한 삶의 무게를 담은 듯한 연출을 선보였다.

주인공 아성을 맡은 배우 마광현은 마냥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던 고교 졸업생에서 아버지의 일터인 평택항 컨테이너 일용직 노동자까지 평범한 인물을 그려낸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큰 고민은 없지만 심성이 착해 '침묵'을 외면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일어난 지도 모른 채 숨이 끊어져버린 후에야 의문과 깨달음이 반복해서 찾아온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 왜 그 행동을 해야했는지, 무엇이 자꾸 마음에 떠오르는 지,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왜 궁금했는 지를 찾아나선다.

무명 역의 홍철호는 엄마와 자신의 삶의 '빈 공간'을 시라고 여기는, 시인을 꿈꾸던 청년이다. 그 역시 쓰레기 처리물 공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엄마가 하려던 말 중 빈 공간이 의미하는 바를 끊임없이 곱씹고 탐구한다. 거기에 자신의 죽음의 비밀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성을 만난 그는 생전의 기억이 합쳐지는 경험을 하고 수수께끼를 적극적으로 풀어간다.

'엔드 월'은 아주 단순하고 흔한 사건을 쉽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 항만 컨테이너 일터의 원·하청 구조, 불합리한 업무 분장, 이주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이 매일같이 마주하는 부조리들은 극중에서도 자연스럽다. 주인공 아성이 '왜 나는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을까'를 탐색하는 과정이 길게 이어지면서 한편으로는 비극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노동 현장의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모두가 아는 간단한 진실과 단순한 구조적 문제를 뼈아프게 꼬집는 대신, 개인의 꿈, 억울함, 아쉬움, 위로 같은 것을 먼저 얘기한다. 아성이 찾아나선 진실을 알게된 후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만 죽음 대신 살아있음에도 환희와 비극이 교차하며 양가적 의미가 강조될 뿐이다. 아성은 죽음 대신 누렸을 삶을 찾아냈지만, '저 벽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관객들은 모두가 다른 대답을 할 지도 모른다.

이미 수 년 째, 국내에서 창작되는 연극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치가 '엔드 월'에서도 반복된다.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유쾌한 장면으로 웃음을 유도하거나, 고성방가가 등장하는 연출은 창작 연극에서 더 이상 어떤 의미를 더하지 못한다. 중요한 감정을 터뜨리는 신에서 고성을 지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믿음도 이제는 식상하다. 초연 무대를 거쳐 조금 더 매끄러운 연출과 설정으로 더욱 깊이있는 수작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jyy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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