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2차 표결을 앞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는 핫팩이 담긴 상자 20여 개가 쌓여있었다. 윤 대통령 퇴진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한 시민이 준비한 것이었다. 상자에는 ‘윤석열 탄핵 심판 응원합니다.필요한 분 가져가세요’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이날 오후 5시 국회 앞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찍 퇴근한 직장인과 대학생 등 많은 시민들로 붐볐다. 윤석열 퇴진비상행동과 촛불행동 등 단체는 오후 6시와 8시에 집회를 예고했지만, 인파는 일찍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퇴진비상행동에 따르면 7시반 기준 15만명이 모였다. 집회 측은 평일 기준 역대 최대 인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을 촛불과 함께 하는 ‘불금’으로 보내겠다는 직장인도 눈에 띄었다. 서울 중랑구에서 온 직장인 김지연(32)씨는 “어제 대국민 담화를 보고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반차를 쓰고 나왔다”며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양모(36)씨는 “오늘 집회를 위해서 방한용품을 미리 아침에 준비해 왔다”며 “회사 사람 중 퇴근하고 합류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가족과 참여한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강모(43)씨는 다섯살 딸과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는 “아이가 애니메이션 티니핑을 좋아하는데 ‘악당을 물리치러 가자’고 하고 나왔다”며 “가족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탄핵 되길 기원하며 3명이라도 힘을 보태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삼남매를 데리고 나왔다는 천모씨는 “막내가 뱃속에 있을 때 박근혜 퇴진 시위를 했는데 다시 나왔다”며 “아이들과 역사적인 날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고 했다.
저녁 내내 이어질 집회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지하철역 화장실에 영양제와 초콜릿 등 간식을 둔 시민도 있었다. ‘탄핵을 외치면 커피 무료’라고 적힌 트럭에서 무료 커피를 나눠주기도 했다. 영등포구에서 온 대학생 이연화(23)씨는 “한마음 한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어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든든하다”며 “정치가 더는 시민들을 고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자 “윤석열을 탄핵하라”,국민의힘 해체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가수 GOD의 촛불하나 등 노래가 흘러나오자 LED 촛불을 흔들며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대학생들도 탄핵 찬성 목소리를 냈다. 이날 오후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일대에선 ‘윤석열 대통령 불법계엄 규탄 및 퇴진 요구를 위한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비상계엄대응을 위한 전국 대학 총학생회 공동행동과 전국 20여개 대학 총학생회가 주최한 행사다. 주최측과 경찰 등에 따르면 약 4500명이 참여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1학년 권모(19)씨는 “20대 대학생들이 모였다는 점이 의미가 있어 나왔다”며 “나라의 미래를 이끌,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와서 의견 낼 만큼 화가 났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주 토요일 여의도 시위도 시험공부를 하다가 참석했는데, 시험 망쳐서 내가 망하는 것보다 나라 망하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외대 2학년 오모(22)씨는 시험을 앞두고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그전엔 뉴스도 잘 안 봤지만 이번 계기로 계속 챙겨보게 된다”며 “집회에 나와보니 이제는 젊은 층도 움직이고 있다는 게 체감된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 유미르(21)씨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책을 들고 나왔다. 생애 첫 집회다. “한강 작가는 학교 선배이자 존경했던 작가인데 지금 상황을 보며 책이 떠올라 들고 나왔다”며 “모든 대학생들이 폭력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광화문에선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자유통일당과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등 보수단체는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1000석 가량 좌석을 마련했는데, 오후 5시가 되자 만석이 됐다.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 김수열 대표는 ‘”인근에서 열린 보수 집회를 마치고 합류하는 인원까지 3000명 가량 결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집회장 곳곳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은 정당한 통치 행위”, “탄핵 반대”, “이재명 대표 구속” 등을 외치는 현수막이 붙었다. 미국 성조기나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었다. 태극기를 손에 쥔 채 집회에 참석한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정모(37)씨는 “나라를 지키러 나왔다. 지금 국회가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 절대로 탄핵이 진행돼선 안 된단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남구 수서동에서 온 안모(62)씨는 "계엄령까지 내린 대통령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며 "입법부가 먼저 대통령 뜻에 반대하며 내란과 비슷하게 행동했으니, 그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