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 계열사 잇따라 어닝 쇼크…영풍전자도 대규모 손실

디스플레이용 FPCB 불량 여파, 작년 당기순손실 수백억 원대 관측

전자 계열 코리아써키트도 창사 이래 최악 실적 기록

영풍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지난해 심각한 실적 부진을 기록한 가운데 전자부문 계열사인 영풍전자도 큰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영풍에 이어 전자부문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와 영풍전자까지 부진한 경영실적을 기록함에 따라 영풍 오너 장씨 일가의 경영역량을 둘러싼 회의론이 업계와 주주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재계 일각에선 궁지에 몰린 영풍그룹 장 씨 일가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영풍과 주요 계열사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세계 1위 제련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트로이카 드라이브 등 신사업을 추진 중인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가면 현재의 입지를 더욱 다지고 미래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최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영풍전자가 애플 벤더(협력사)에서 퇴출 수순을 밟으면서 실적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전자는 수년 동안 아이폰 디스플레이용 FPCB를 납품하면서 애플 협력사로 활약했으나 2022년 당시 공급한 부품의 불량이 확인되고, 부품 공급에 있어 신뢰를 잃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납품 불량이 발생한 이후 애플은 영풍전자를 점진적으로 공급망에서 배제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시판된 스마트폰 모델과 영풍전자가 개발에 관여한 2023년 일부 모델에 한해서만 납품됐고 지난해엔 애플 관련 물량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결국 애플 거래선이 끊기면서 영풍전자 실적은 급격히 위축됐다. 매출은 2022년 7,202억원에서 2023년 4,672억원으로 1년 만에 35.1%(2,530억원) 급감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02억원에서 106억원으로 88.2%(796억원) 줄었다.

비상장사인 영풍전자는 분기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상장사인 ㈜영풍의 100% 자회사인만큼 ㈜영풍 분기보고서를 통해 매출과 순이익을 분기별로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3분기 누적 매출은 1,491억원으로 2023년 같은 기간의 3,434억원과 견줘 57%(1,943억원) 감소했다. 순이익 역시 마이너스(-) 174억원으로 전년동기 255억원 대비 적자 전환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4분기에 어느 정도 실적을 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전자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매년 4분기가 스마트폰 부품 공급의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영풍전자의 실적 반등은 여의치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도 영풍전자의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꼽힌다. 애플이 영풍전자를 벤더에서 퇴출시킨 뒤 스마트폰용 FPCB 제조사 SI플렉스를 2024년에 신규 협력사로 편입해 공급사로의 복귀가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설상가상으로 영풍전자 핵심 기술진, 엔지니어, 생산직 근로자들이 대거 SI플렉스로 이직한 것으로 알려지며 향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영풍이 지분 일체를 소유한 영풍전자는 1995년에 영풍 계열로 편입됐다. 장형진 영풍 고문이 과거 회장에 취임하면서 사업 다각화를 염두에 두고 처음 인수한 회사기도 하다. M&A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FPCB를 생산하던 기업으로, 2000년에 회사명을 유원전자에서 지금의 영풍전자로 변경했다.

영풍전자는 한때 영풍그룹 오너 3세인 장세준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참여했다. 장 부회장은 2009년 시그네틱스 전무로 경영수업을 시작했고 이후 2010년 영풍전자에서 구매를 총괄하다가 2013년 대표이사로 취임해 2017년까지 경영했다.

장 부회장은 현재 코리아써키트 대표이사 겸 부회장으로 재직 중인데, 코리아써키트 역시 영풍전자와 마찬가지로 사업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전년대비 적자 폭이 4배 넘게 커지며 당기순손실이 1,217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라 현금창출단위(CGU) 손상 검토 결과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발생해 당기순손실이 3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코리아써키트의 설명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비철금속 세계1위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M&A를 5개월 넘게 지속하면서 영풍 장씨 일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하지만 그룹의 핵심인 영풍을 비롯해 코리아써키트, 영풍전자까지 영풍그룹 계열사 실적이 낙제점 수준을 기록하면서 규모가 몇 배나 큰 고려아연을 경영할만한 능력이 있는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